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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HQ

[쿠로켄]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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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 전력 주제 상처 닌자AU






찾았다, 고양이.




가면을 스친 수리검이 애처롭게 나무에 박혔다. 수리검이 일으킨 바람에 노란색의 머리가 흩날렸다. 하얀 고양이의 가면을 쓴 남자 앞에 쿠로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양이라 불리는 남자는 쿠로오의 등장에도 동요 한 번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우뚝 서 자신과 거리를 좁히는 쿠로오를 향해 발을 딛고 있을뿐이었다. 수리검을 쥔 쿠로오가 고양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리검을 피하는 몸짓이 고양이처럼 날렵했다. 반격의 생각은 없는 사람처럼 자신을 향한 수리검들을 피하기만 할 뿐, 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마을의 골칫덩이인 고양이를 쫓은 시간만 벌써 세 달이었다. 세 달동안 고양이의 가면은 눈에 자주 띄었으나 고양이를 사로잡은 닌자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눈 앞에서 놓쳤다는 터무니없는 변명만 늘어놨을뿐이었다. 정말로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으나 고양이 가면과 마주친 쿠로오는 눈 앞에서 놓쳐버린 닌자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놓칠 수 밖에 없는 움직임이었다.


순식간에 수리검이 쿠로오를 향했다. 방어만 하던 고양이 가면의 첫 공격을 피할 수 없었던 쿠로오의 왼쪽 눈을 크게 긋고 지나갔다. 엄청난 고통에 무릎을 꿇은 쿠로오의 시야가 흐릿했다. 한쪽 눈이 당하자 남은 눈마저 시야를 바로잡기가 힘들었다. 공격의 의지를 잃어버린 쿠로오를 죽이려 들지 않았다. 크게 그어버린 눈을 감싸며 주저앉은 쿠로오를 가면 너머로 가만히 응시하던 고양이 가면은 멀리서 사람들의 목소리에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   *   *





야, 너 제정신이냐? 어?




눈의 상태를 확인한 야쿠는 쿠로오에게 큰소리부터 냈다. 크게 그어버린 상처는 흉터를 피할 수 없었고 쿠로오의 시각도 빼앗았다. 닌자에게 있어 시각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시각 한쪽을 크게 잃어버린 쿠로오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었다. 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흰색으로 변해버렸다. 쿠로오의 눈을 되살리고자 모든 약초와 방법을 동원했으나 인간의 장기는 닌자들의 치료로 쉽게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야쿠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닌자를 꿈꿔온 친구의 미래가 불투명하게 변했다. 입술을 깨문 야쿠의 어깨를 토닥였다.




나 아직 잘린 것도 아니고.

너 잘려, 바보야.

혹시 아냐, 살아날 지.




마음도 편하다. 커다란 눈에서 흐르는 감정들이 무릎 위로 떨어졌다. 입꼬리를 올리며 머리를 쓰다듬는 쿠로오의 눈에 붕대가 감겼다. 한쪽으로밖에 세상을 볼 수 없었다. 한쪽만 잃어버려도 생활에 있어서 장애물들이 많았다. 쿠로오는 상급닌자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고 자리에 올랐다. 잠깐의 방심에 눈을 잃었고 다시는 닌자복을 입지 못할 수 있는 상황까지 처해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웃음만 지으며 치료실을 빠져나가는 쿠로오의 뒷모습마저 안타까웠다. 


결국 쿠로오는 상급닌자라는 계급은 그대로였으나 닌자복을 벗어야만 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을 돌려놓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시각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었다. 쿠로오가 일상으로 돌아가자 마을에는 큰 구멍이 생겼다. 뛰어난 능력과 지능으로 항상 한 발 앞서던 쿠로오가 사라지자 그 구멍을 메울만한 인재가 마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쿠로오로 그 구멍을 다시 채운다고 해도 한쪽 시각을 잃어버린 그에게 있어 세상을 좁은 시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좁은 시야에서 적들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고 다른 눈마저 잃어버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존재했다.




쿠로.




오래도록 집을 비웠으나 티끌 하나 없이 말끔했다. 문을 열어 쿠로를 맞이하는 켄마를 끌어안고 행복하게 웃었다. 닌자복이 아닌 평상복으로 돌아와 켄마를 안고 보고 싶었다며 수도 없이 뽀뽀하는 입술을 밀어냈다. 얼굴 반을 차지하고 있는 붕대를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왼쪽 눈을 가려버린 붕대에 붉게 피가 스며들었다. 붕대에 손을 올린 켄마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위험한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쿠로오가 켄마의 말을 들을 리는 없었다. 같이 사는 친구이자 연인의 말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닌자복을 벗을 정도의 상처를 달고 돌아온 쿠로오가 탐탁치 않았다.




쿠로, 눈.

아, 괜찮아.

이게 괜찮아? 너 안 보이잖아.

나 시각 잃었다고 말 안 했는데.




그냥 봐도 알아. 켄마의 몸이 돌아갔다. 노란색의 머리가 찰랑댔다. 고양이의 가면을 쓴 그 남자의 머리도 켄마랑 비슷했는데. 기억을 되짚어 고양이 가면을 생각했다. 비슷한 체격에 비슷한 머리칼을 가진 남자였다. 켄마의 전투력은 0에 가까웠으니 켄마가 아닐까라는 의심조차 쿠로오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켄마가 그저 좋아서 행복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켄마의 눈에는 얼굴의 반을 차지한 붕대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직 제대로 지혈이 되지 않은 피들이 붕대의 색을 점점 바꿨다. 붕대 밖으로 보이는 길다란 상처에 손을 대었다. 볼까지 내려온 긴 상처는 쿠로오의 얼굴에 평생 남아있을 것이다. 켄마의 얼굴이 굳어졌다.




괜찮다니까, 켄마.

미안, 쿠로.




이유 모를 말을 내뱉은 켄마가 급하게 몸을 돌려 부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자신 때문에 쿠로오가 위험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켄마였기에 미안하다며 몸을 돌리는 켄마의 뒷모습이 쓸쓸했다. 쿠로오가 닌자를 한다고 선언했을 때 켄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쿠로오가 한 번 정한 미래를 꺾을 수는 없었다. 전투력이 아예 없는 켄마의 옆에서 지켜주겠다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약속한 쿠로오는 결국 닌자의 길을 택했고 길을 걸으면서 몸에 상처를 달고 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항상 작은 생채기라도 달고 돌아온 쿠로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켄마의 마음은 찢겨나갔다. 피투성이로 돌아와 눈 앞에서 숨을 거둘 것 같은 모습이 두려웠다. 




쿠로, 이제 안 나가?

어, 나 잘렸어.




그만뒀다는 말보다 더 반가운 말이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켄마의 입에선 작게 미소가 띄어졌다. 피로 범벅이 되어 돌아올 쿠로오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켄마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웠다. 등을 보고 있는 쿠로오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작은 행복이었다.





*   *   *






네코 마을의 구멍은 너무나도 컸다. 쿠로오가 없이 임무를 수행했으나 그 한계가 여실하게 드러났다. 상처를 달고 돌아오는 닌자들이 많았으며 빠져나오지 못한 덫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닌자들의 수도 급증했다. 상황을 판단하고 바른 길을 알려주는 쿠로오의 빈자리엔 다른 닌자들의 죽음만이 남았다. 결국 쿠로오는 복귀신청을 받았다. 복귀하여 닌자들에게 길을 알려주고 그들을 보호해 달라는 신청서가 쿠로오의 집으로 날아왔다. 한동안 켄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일상에 취해있었다. 수리검을 쥐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으나 눈의 상처를 더 악화시킬 수 없었다. 금빛이었던 눈동자는 이미 흰색으로 빛을 잃었고 길다란 상처만을 쿠로오에게 안겨줬다. 집을 비운 켄마에게 비밀로 하기로 결심한 쿠로오는 깊숙히 넣어뒀던 닌자복을 꺼냈다. 


다른 마을의 습격은 네코 마을에게 큰 타격을 안겨줬으나 쿠로오의 복귀로 하나하나 지시를 받은 닌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마을을 보호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마을을 지켰고 쿠로오의 지시는 완벽했다. 습격했던 마을이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다. 좁은 시야로 세상을 보기란 어려웠다.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닌자들을 예전보다 빠르게 알아챌 수 없었다. 날아오는 수리검들을 막기에 쿠로오의 시야는 너무나도 좁았다.




쿠로.




귀를 의심했다. 어디선가 켄마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주위를 둘러봐도 켄마는 없었다. 분명히 켄마의 목소리였다. 다른 마을의 인장을 달고 나타난 하얀 고양이 가면의 남자. 노란 머리는 사라지고 검은색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고양이 가면의 등장으로 네코 마을의 닌자들이 분주해졌다. 누구보다 빨랐고 누구보다 유연했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고양이 가면이 사라졌다.


쿠로.


귀에서 울리는 켄마의 목소리에 쿠로오의 집중력이 흩어졌다. 어디에서 들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고양이 가면을 찾기 위해 쿠로오의 옆에 남아있던 닌자들도 모두 흩어졌다. 혼자가 되어버린 쿠로오 앞에 고양이 가면이 다시 나타났다. 검은색의 머리를 흩날리며 모습을 드러낸 고양이 가면은 천천히 쿠로오에게 다가갔다. 가면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가 노랗게 빛났다. 이마에서부터 볼까지 이어지는 흉터애 손이 올라갔다. 자신의 수리검으로 낸 흉터를 천천히 쓰다듬던 고양이 가면의 손길이 유독 슬프게 느껴졌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쿠로오도 공격할 수 없었다. 자신의 흉터를 쓰다듬는 손길을 따라 시야가 내려갔다. 뭔가를 소중하게 쥐고 있던 손이 쿠로오의 시야에 들어왔다. 


고양이 가면의 몸이 앞으로 무너졌다. 사방에서 날아온 수리검들이 등에 박혔다. 쿠로오를 향해 무너진 몸을 잡았다. 던져진 수리검들의 주인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잡을 수 없다던 고양이 가면이 그들의 시야에 있었다. 너무나도 약한 모습으로. 고양의 가면의 시야가 점차 위로 올라갔다. 쿠로오의 손이 가면으로 향했다. 천천히 걷혀지는 가면과 함께 가면 안의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켄마!




검은색의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쿠로오는 자신이 한 말을 기억했다.

켄마, 검정머리 언제 할 거야?

그리고 켄마는 검정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가면을 쓴 채 쿠로오 앞에 나타났다. 노란색의 눈이 쿠로오를 가득 응시했다. 기댄 손이 점차 위로 올라가 흉터를 어루만졌다. 옅은 미소가 띄어진 얼굴에 평온함이 가득했다. 피로 가득 젖어버린 옷과는 다르게 평온한 얼굴의 켄마는 입술을 달싹였다.




미안해, 쿠로.




입술 안에 담아두었던 많은 말들을 내뱉지 못하고 켄마의 숨이 끊어졌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작은 몸을 끌어안았다. 물들인지 얼마 되지 않은 머리에서 옅게 냄새가 났다. 상처가 욱씬거렸다. 감긴 눈커풀 위로 쿠로오의 눈물이 쉴새 없이 쏟아졌다. 켄마에게서 흐르는 피들이 쿠로오의 옷 안으로 스며들었다. 켄마를 안아든 쿠로오는 자신을 부르는 닌자들을 뒤로하고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양이 가면과 쿠로오가 처음 만난 장소에 소중하게 켄마를 내려놓은 쿠로오는 수리검 대신 소중하게 쥐고 있던 켄마의 주먹을 폈다. 켄마에게 처음으로 선물했던 곰의 뼈 목걸이가 쪽지와 함께 손 안에 담겨있었다. 켄마 옆에 시선을 맞춰 누운 쿠로오는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다시는 이 눈이 띄이지 않기를 바라며.


너에게 이런 상처를 안겨 줘서 미안해, 테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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