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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HQ

[오이이와] 한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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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이와이즈미 시점.





학교로 가는 발걸음은 항상 혼자였다. 혼자 길을 걷고 있으면 모르게 다가와 발을 맞추며 내 이름을 부르는 소꿉친구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이름도 성도 아닌 그저 자신만의 애칭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호칭을 입에 담으며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같이 하고 어깨를 감쌌다. 남자끼리에 친구 사이에 이상할 것 없는 행동이었으나 불편했다. 빠르게 뛰는 심장이 오이카와의 귀에 닿을 것 같아 두려웠다. 몸에 닿아 느껴지는 손길 하나하나가 소름 돋을 정도로 좋았고 그만큼 예민해졌다. 같은 학교에서 같이 대화를 하고 모든 것이 끝나면 같은 체육관에서 같은 공으로 연습을 한다는 소소한 사실 자체가 행복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오이카와는 달랐다. 옆에는 항상 여자들이 우글대며 그 커다란 손에 선물을 쥐어주기 바빴고 오이카와의 서랍 안에는 러브레터들이 가득했다. 부원들이 봐도 예쁨에 극에 달하는 여자들도 오이카와의 옆에서 말을 걸기 바빴으며 그런 여자애들 앞에서 입꼬리를 올리며 신사처럼 행동하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옆구리에 두고 다니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전부 예뻤으며 여자 친구가 자기에게 줬다는 선물들을 내 앞에서 자랑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와 쨩, 못생겼어!

죽고 싶냐, 쿠소!




못생겼다는 말을 달고 사는 오이카와의 입이었으나 적응하기는 힘들었다.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건네는 농담이라는 것을 머리는 인지하지만 가슴은 인지하지 못했다. 긁히는 스크래치는 이미 심장을 너덜너덜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항상 어여쁜 아이만 옆에 두고 사는 오이카와에게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기에. 한 방향으로만 향하는 마음은 보여지지 않는다. 없는 벽을 혼자 세워두고 등만 바라보는 일은 별로 반갑지 않았다. 심하게 앓았다. 정말로 심하게 앓았다. 온몸에서 열이 나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앓았었다. 나 자신이 공기를 마시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앓았다.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앓는 병이었다. 머리에서 온통 오이카와의 이름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앓았다. 그리고 나를 찾아온 건 한 뱡으로 향하는 마음조차 모르는 나의 소꿉친구였다.




이와 쨩, 많이 아파? 그러고 있으니까 더 못생겼어.

너는 여기서도 그러고 싶냐, 멍청카와.......




삐죽이는 입술이었으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 묻어 나를 괴롭혔다. 열을 체크하고 수건을 올려주는 손길이 다정했다. 눈을 감고 꿈을 꿔도 옆에 있을 거라는 다정한 말이 창이 되어 내 심장을 내리꽂았다. 오이카와의 옆에는 여자아이가 있었고, 나는 그저 그의 소꿉친구라는 직위였으니까. 조금만 눈 붙이라는 다정한 말과 토닥이는 손길에 몸을 맡기고 정신을 맡기고 싶지 않았으나 그 공간마저 행복했다. 눈이 감기고 정신이 아득할 때 잘 자라는 다정한 말 한 마디가 자장가가 되어 내 정신을 빼앗았다. 


오이카와는 약속한 대로 내가 눈을 뜰 때까지 내 옆에 있었고 눈을 뜨자마자 차가운 수건으로 바꿔주고나서야 엉덩이를 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내일은 아프지 말라는 오이카와 특유의 말과 함께. 행복해서 울었다. 약속을 지켜 줘서 울었다. 기대도 안 했는데 오이카와는 정말로 옆에 남아 내가 눈을 뜰 때까지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미친듯이 기대감이 올라갔다. 나에게 기대감을 심어주는 오이카와를 향한 미움의 감정도 커졌으나 그만큼 행복한 감정이 더 크게 자리잡았다. 내가 너무 멍청해서 울었다.





*   *   *





쉽게 가진 기대감은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오이카와의 옆에는 항상 여자들이 넘쳐났고 여자친구가 존재했다. 받은 선물들을 자랑하고 받은 편지들을 하나하나 유심하게 읽는 오이카와의 모습만 내 눈에 담는 게 전부였다. 배구하는 체육관과 하교하는 길이 아닌 이상 오이카와의 옆에 다가갈 수 없는 아우라들은 내 기대치를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 심장이 조각나 흩어졌으나 조각조차 주우러 무릎을 꿇지 못했다. 조각들을 주워 천천히 다시 맞춰간다고 해도 다시 부서질 게 뻔했기에. 내 미래가 너무 여실하게 눈 앞에 보였으니까.


육 년이라는 시간동안 한 방향으로 흐르는 감정을 숨긴 채 오이카와의 옆에서 지냈다. 그 긴 시간동안 오이카와는 알 수 없었다. 낮아진 기대치는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었고 같은 코트 안에서 같이 뛸 수 있다는 사실로 행복감을 느끼는 나의 욕심이 자랑스러웠다. 친구라는 사이를 유지하며 장난을 치고 평소와 같은 행동을 하며 낄낄대며 웃는 평범한 남고생들처럼 지낼 수 있다는 사소한 현실이 행복으로 다가온다는 것 자체가 대견스러웠다.




이와 쨩, 예쁘지.

또 선물이냐.




받은 선물들을 자랑하며 나에게 보여주는 건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표정이 좋지 않은 나를 걱정하며 뻗는 손길이 좋아 항상 표정을 굳혔다. 항상 굳히는 표정이었으나 오이카와는 못생겼다는 말과 함께 선물을 뒤로 제쳐두고 내 옆에 앉았다. 내 안부를 물으며 내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쳐다보는 그 눈길이 좋았다. 뻗는 손을 나도 모르게 잡으려고 뻗은 적도 많았으나 그 짧은 거리에서도 오이카와의 손과 내 손은 만나지 못했다. 그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라는 운명일까. 소유하지 않았지만 온전히 소유한 기분에 일부러 굳힌다는 걸 알면, 너는 나에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오이카와. 




오이카와 씨만 선물 받아서 질투 나?




항상 그랬던 것처럼 미간을 좁히며 오이카와를 노려 본다.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웃는 미소에 손을 뻗고 싶은 충동을 겨우겨우 밀어넣었다. 질투 나는구나, 이와 쨩? 서슴없이 내 볼에 손을 대며 시선을 맞추는 그 눈빛이 반쨕여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천천히 올라가는 손이 오이카와의 얼굴에 닿았다. 내 손에서 느껴지는 촉감은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고 뒤로 넘어가버린 나를 오이카와는 빠르게 내 손목을 잡아채 끌어당겼다. 오이카와의 품으로 들어간 모양에 숨마저 막혔다.




이와 쨩, 괜찮아?




네 얼굴을 만졌는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냐. 내가 만진 촉감에 내가 너무 놀래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데 왜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 건데, 오이카와. 막힌 숨이 결국 눈물을 불렀다. 젖어버린 내 눈을 보고도 오이카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입술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는 듯 가만히 시선만 맞추고 있었다. 차라리 울어서 못생겼다고 장난이라도 치면 뒤통수라도 가격할 텐데, 쓸데없이 이런 곳에서 어른스럽다. 거칠게 손을 뺐다. 허공에 남아버린 오이카와의 손이 길을 찾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교실을 나가려 문으로 향하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받은 선물을 자랑했으면서 내가 다쳤을까 말도 없이 확인하는 오이카와의 모습은 나에게 다시 높은 기대감을 박아주기 충분했다.


망할쿠소. 눈 밖으로 나온 눈물은 멈출 생각을 안 했다. 육 년이라는 시간의 짝사랑은 사람을 무뎌지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으나 한결같이 좋았다. 한결같이 옆에 있고 싶었다. 상대방이 모르는 한 방향의 마음은 내 자신 스스로 내 마음을 찢어냈고 조각냈다. 조각은 새로운 마음을 만들었고 육 년이라는 시간동안 커져버린 마음은 주체할 수 없었다.

차라리 다정하지나 말지, 토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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