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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HQ

[쿠로켄] 검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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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 전력 주제 우산

수인AU





검은색의 커다란 우산이 머리 위로 올라왔다. 흐릿한 시야 안으로 흐릿한 인영만 보였다. 차가운 비를 온몸으로 맞아 얼음장으로 변해버린 몸이 약하게 움직였다. 몸이 공중으로 뜨더니 따뜻한 체온이 피부로 느껴졌다. 미약하게 목소리를 내는 검은 고양이를 소중하게 끌어안은 켄마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피부로 전해지는 고양이의 체온이 낮았다. 눈마저 제대로 뜨지 못하는 고양이의 목소리마저 소리가 약했다. 어디로 끌려갈 지 모르는 불안감에서 나오는 버둥거림이었으나 품 안에서 미약한 움직임은 켄마에게마저 전해지지 못했다. 사람의 체온이 전해지고 몸에 닿는 빗줄기가 사라지자 처음부터 무거웠던 눈꺼풀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따뜻한 바닥과 따뜻한 공기에 검은 고양이는 정신을 잃듯이 눈을 감았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안정을 찾자 켄마의 표정도 안정을 찾았다. 손을 대어도 눈을 뜨지 못하는 고양이의 위에 담요를 덮었다. 많이 떨어진 체온을 살리는 게 우선이었다. 방을 밝히던 불을 꺼 잠을 깨우지 않으려 애썼다. 이불을 덮는 순간까지도 켄마의 눈동자는 고양이를 향한 걱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   *   *





미야. 약하게 들리는 검은 고양이의 울음에 켄마의 눈꺼풀이 서서히 올라갔으나 눈에 가득한 졸음을 이기지는 못했다. 천천히 깜박여 흐릿하게 보이는 시야에 금빛의 눈동자가 들어왔다. 금빛의 눈동자, 까만 흑발. 어둠 속에서 보이는 흐릿한 인영의 남자였으나 몽롱한 켄마의 정신은 남자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다. 낯설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안녕.




가볍게 지은 미소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다정했다.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에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하늘은 어두웠고 켄마에게 필요한 건 잠이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다시 들어올렸으나 흐릿한 시야는 선명해지지 않았다. 흐리게 보이는 두 개의 빛나는 눈동자만이 켄마를 향하고 있었다. 꿈이라고 생각한 켄마의 손이 느릿하게 남자를 향했다. 고개를 숙여 머리칼이 켄마의 손바닥에 닿자 쓰다듬기를 몇 번 반복했다. 얼굴 전체를 느릿하게 쓰다듬었던 켄마의 손이 떨어졌다. 켄마와 남자의 얼굴이 가까웠다.




나는 쿠로오 테츠로.




낮은 목소리가 켄마 귀 가득 울려퍼졌다. 쿠로. 입술을 작게 움직여 이름에 반응한 켄마의 입술이 오물거렸다. 코즈메 켄마. 남자가 이름에 반응하기를 기다리지 못한 켄마의 눈이 다시 서서히 감겼다. 




밝은 햇살이 켄마의 눈을 콕콕 찔러댔다. 미간을 좁히며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으나 눈꺼풀을 올리는 울음소리에 켄마의 상체가 반사적으로 올라갔다. 비에 맞아 푸석하게 병들어 있던 고양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윤기가 흐르는 까만 털에 빛나는 금빛의 눈동자가 켄마를 향해 울고 있었다. 정확하지 않은 꿈에서 흐릿하게 시야에 담았던 금빛의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귀에 맴돌았던 목소리를 몇 번이나 곱씹었으나 제대로 기억나는 건 단 두 글자였다.




쿠로.




미야. 고양이가 대답했다. 쿠로라는 단어에 응답하며 켄마의 곁으로 걸어와 온몸을 부비며 애교를 떨었다. 켄마의 손바닥에 머리를 대며 자연스럽게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리며 검은 고양이는 켄마의 옆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켄마가 자리를 비우는 날이면 현관에 엉덩이를 붙인 검은 고양이는 다리조차 피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어 켄마를 기다렸다. 켄마가 챙겨준 음식조차 입에 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켄마를 기다렸고 켄마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그제서야 몸을 돌려 음식에 혀를 대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문을 열면 자동으로 울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켄마의 입에도 미소가 걸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혼자 사는 길을 선택한 켄마에게 외로움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텅 비어버린 집에 혼자 들어가고 혼자 밥을 먹고 하는 일이 매일 있었으나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저 돕기 위해 빗속에서 쓰러진 검은 고양이를 데려왔고 길고양이를 다시 방생할 목적으로 씻기고 재웠으나 이후로 검은 고양이의 켄마를 향한 애정 공세는 고양이가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켄마만 보면 소통을 위해 야옹거리며 울었고 손을 뻗으면 머리부터 손바닥에 대 쓰다듬어 주기를 원했다. 결국 꿈 속에서 본 남자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검은 고양이의 이름은 쿠로였다. 문을 열면 쿠로가 켄마를 맞이했고 켄마의 눈꺼풀이 닫히기 전까지 야옹거리며 켄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쿠로, 너 사람같아.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대답하는 쿠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동물을 앞에 앉혀두고 켄마는 조용하게 하루 일과를 풀었다. 켄마의 입술이 닫히기 전까지 쿠로는 울지 않았다. 가만히 귀를 세우고 금빛의 눈동자를 켄마에게 고정시키고 뱉어지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켄마의 입술이 닫히면 기다렸다는 듯이 야옹거리며 다리에 몸을 부비는 쿠로의 감정이 전달되었다. 슬픈 일이 있으면 위로를 했고 행복한 일이 있으면 말을 듣고 있던 쿠로마저 행복하게 웃었다. 온몸으로 켄마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쿠로의 모습에 켄마는 눈물을 떨구다가도 미소를 짓는 날이 늘어났다.




쿠로, 너 나랑 계속 있을 거지.




품 안의 검은 고양이에게 터무니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가만히 안겨있던 고개가 켄마를 향했다. 금빛의 눈동자 안에 켄마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냐. 대답하듯 입을 벌려 우는 쿠로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다는 소리인지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으나 쿠로의 대답만으로도 켄마는 안정을 찾았다. 먼저 눈을 감은 쿠로를 옆에 내려놓은 켄마는 어둠을 밝히던 불을 껐다. 방에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왔다. 눈을 감고 조용하게 자고 있는 쿠로의 몸을 쓰다듬었다. 손길에도 눈을 뜨지 않는 쿠로를 향해 켄마는 수십 번을 말을 걸었다.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의식을 맡겼다. 시야마저 어두워지고 켄마는 눈을 감았다.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켄마는 눈꺼풀을 느리게 들어올렸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금빛의 눈동자 두 개, 그리고 까만 흑발의 남자가 켄마의 시야에 잡혔다. 다시 나타난 꿈 속의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다정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남자가 낯설지 않았다. 남자의 손이 켄마의 얼굴로 올라왔다. 켄마가 자신에게 행했던 것처럼 머리부터 얼굴까지 천천히 쓰다듬은 남자는 입술을 열었다.




곧 돌아올게, 켄마.




돌아온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켄마의 고개는 자동으로 끄덕여지고 있었다. 다시 눈꺼풀을 닫았다. 의식이 멀어지기 전까지 얼굴에 느껴졌던 따뜻한 온기가 사라졌다. 밀려오는 한기에 멀어졌던 의식이 돌아왔다. 급하게 몸을 일으킨 켄마는 스위치를 눌러 방 안에 빛을 밝혔다. 옆에서 눈을 감고 자고 있던 쿠로가 없었다. 열린 창문도 없었고 현관문은 단속까지 꼼꼼하게 되어 있어 쿠로가 나갔다고 생각되는 장소는 아무데도 없었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쿠로에 켄마는 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다. 목소리를 내어 쿠로의 이름을 불렀으나 어디에서도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켄마와 일 주일을 지낸 쿠로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아이처럼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꿈에서 봤던 남자는 이별을 고하지 않았으나 간접적인 이별을 고했고 꿈이라고 생각했던 남자의 온기가 사라지자 쿠로마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둠에서도 선명했던 금빛의 눈동자 두 개가 문을 열고 들어와도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 한 마리 사라진 게 전부였으나 켄마는 일 주일동안 잊고 지냈던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다시 피부로 실감했다. 말을 건넬 것 하나 없이 혼자 감정에 사무쳐 울다가 자는 날들이 많아졌다. 고양이 울음소리로 깼던 아침마저 없었다. 피곤한 눈꺼풀을 들어올리면 햇빛만이 켄마를 반겨주고 있었다.


맑은 아침을 보며 집을 나섰으나 순식간에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우더니 물방울을 만들어 비를 내렸다. 무섭게 쏟아지는 비에 켄마는 한숨부터 쉬었다. 학교에서부터 자취하는 곳은 걸어서 채 십 분도 되지 않으나 거세게 쏟아지는 비를 뚫으면 온몸이 금방 젖어버릴 게 분명했다. 가방을 머리에 올린 켄마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비를 뚫고 뛰어야하는 다리가 덜덜 떨렸다.




켄마.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뛰어나가려던 다리가 멈췄다. 검은색 우산을 쓴 금빛 눈동자의 남자는 미소만 지은 채 켄마의 앞에 서 있었다. 까만 흑발, 금빛 눈동자. 어디에서 많이 본 생김새에 머리에 올려놓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검은색의 머리에 상의, 하의, 신발마저 검은색으로 착용한 남자에게서 빛나는 건 금빛의 눈동자였다. 우산을 앞으로 기울여 켄마에게 씌웠다. 




늦어서 미안해. 생각보다 길어졌어.




이유 모를 말을 내뱉으며 켄마에게 우산을 씌우는 남자의 표정에 집중했다. 모르는 남자가 켄마에게 늦었다는 말을 할 리 없었다. 생각보다 길어졌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커다란 검은색 우산을 씌워 천천히 켄마에게 발을 맞춰 걷는 남자의 입술에선 이상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비를 맞지 않는 건 다행이었으나 우산을 씌워주는 남자가 하는 말을 켄마는 이해하지 못했다. 복잡한 생각에 집을 알려주지도 않았으나 켄마의 자취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앞에서 켄마를 들여보낸 남자는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건물 앞에 가만히 있었다. 눈동자는 오직 켄마에게 집중된 채 켄마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저기, 들어올래..... 요?




친절을 베푼 남자에게 뭐라고 전할 말이 없었던 켄마는 현관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빨을 보이며 웃는 남자의 모습이 익숙했다. 혼자 사는 방에 사람이 두 명으로 늘자 가득 찬 기분에 켄마는 지금까지 외로움에 사무쳤던 기억에서 멀어졌다. 집을 한 바퀴 훑던 남자는 구석에 그대로 남아있는 고양이의 먹이통이 남자의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의 먹이통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켄마가 입술을 열었다.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 거.......

안 버렸네, 켄마.




처음부터 알고 있어던 사람처럼 버리지 않았다는 목소리에서 충격이 느껴졌다. 무엇을 뜻하는 지 몰랐던 켄마가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남자의 머리에 튀어나온 고양이처럼 보이는 까만 귀였다. 환각이라고 생각했다. 등 뒤에서 보이는 꼬리마저 환각이라고 생각해 눈을 비볐으나 눈 앞에 정확하게 보이는 남자의 귀와 꼬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안 버렸어. 젖은 목소리가 다정하게 말하는 남자의 금빛 눈동자가 빛났다. 


아, 생각났어.


켄마의 미간이 좁혀졌다. 남자가 자기에게 했던 말들이 조각조각 이야기를 이뤄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봤던 인영이 이제서야 눈 앞에서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빛나는 금빛 눈동자가 가까워지고 남자의 품 안 가득 켄마가 채워졌다. 남자가 자신을 향해 씌워줬던 우산마저 기억났다. 빗속에서 쓰러진 고양이를 데리고 왔을 때 가지고 있었던 검은색의 작은 우산이었다. 늦어서 미안해. 남자가 한 번 더 켄마에게 사과를 건넸다. 익숙한 냄새게 켄마에게 풍겼다. 쿠로를 데리고 있었던 그 일 주일 동안 자취방 가득 풍기던 쿠로의 냄새. 거리가 멀어지며 젖은 금빛의 눈동자가 켄마를 담았다.




쿠로.




젖은 목소리 가득 쿠로를 불렀다. 손을 올려 머리부터 얼굴까지 천천히 쓰다듬었다. 금빛의 눈동자가 눈꺼풀에 모습을 감추고 켄마의 손길을 천천히 느꼈다. 꿈에서 느꼈던 감촉 그대로 켄마의 손바닥에 전해졌다. 부드러운 머릿결과 피부, 그리고 턱에 닿으면 뜨여지는 눈꺼풀 모두가 꿈에서 흐릿하게 봤던 그대로 보여지고 있었다. 쿠로를 쓰다듬는 손이 떨어지자 쿠로의 손이 켄마의 머리 위로 올라왔다. 눈을 감자 시야가 어두웠다. 머리에서부터 느껴지는 온도에 몸을 맡겼다. 천천히 쓰다듬는 손길에 쿠로의 손바닥에 얼굴을 부볐다. 턱에 닿는 손길에 눈을 뜬 켄마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행복함을 눈에서 떨구는 쿠로오의 열리는 입술을 읽었다.

평생 네 옆에 있을 거야, 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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