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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HQ

[마츠하나] 마지막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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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하나 전력 주제 펌킨타임 성장하면 죽는 병


펌킨타임

꿈이 깨고 냉혹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처음으로 마주한 하나마키는 어렸다. 분홍색의 머리에 어울리는 애기같은 얼굴은 시선을 사로잡기에도 충분했다. 키만 멀대같이 큰 징그러운 남자들 사이에서 분홍색의 머리는 유난히 빛이 났다. 자신이 할 일만을 완벽하게 마치고 자리를 떠나는 하나마키에 호기심을 가진 마츠카와는 자리를 옮겨 하나마키와 같은 줄에 착석했다. 누가 옆에 다가오는 것조차 모르고 시선이 박힌 곳에만 집중하는 미간이 좁혀졌다. 애기같은 얼굴과는 다른 긴 손가락이 얼굴로 올라가 안경을 올렸다. 올라간 손과 함께 따라가는 시선은 하나마키의 얼굴에 정착했다. 자신이 하나마키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건 하나마키와 시선이 얽히고 난 후였다. 급하게 시선을 돌렸으나 하나마키의 시선은 마츠카와를 향했다.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부스럭소리가 났다. 마츠카와는 얼굴을 구겼다. 불편해서 자리를 옮기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더 보라고.




하나마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도발적이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입술 밖으로 말을 내뱉은 하나마키는 이내 자신의 공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음껏 보라고 거리까지 좁혀줬는데 마츠카와는 차마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보는 것을 들킨 것마저 모자라 더 보라고 옆자리까지 차지했다. 곁눈질로도 분홍색의 머리카락조차 보기가 힘들었다. 시작된 강의조차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필기하는 하나마키의 손을 따라 얼굴에 도착한 시선을 다시 알아챈 건 하나마키와 시선이 또 다시 얽혔을 때였다. 


미친, 존나 쪽팔려.

두 번이나 들켰다. 더 보라고 거리까지 좁혀주긴 했지만 또 들켰다. 하나마키의 입술에서 튀어나온 말은 더욱 마츠카와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지금 교수님이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며 필기하라고 자신의 공책까지 밀어줬다. 끝난 강의에 짐을 챙겨 일어서는 하나마키의 키는 예상보다 더 작았다. 마츠카와가 무릎을 피자 시선이 한참은 아래로 내려갔다. 더 보라고 말했던 패기는 사라졌는지 하나마키는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건물이 매캐했다. 멀대같이 큰 시커먼 공대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입에 물고 대학생다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츠카와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에 담배 하나를 물고 사방에서 다른 주제로 떠드는 이야기들을 양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매캐한 공기 사이로 분홍색의 머리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하나마키는 눈으로 잡은 마츠카와는 물었던 장초를 바닥에 떨구고 분홍 머리를 향해 달렸다.




하나마키.




뒤를 돌아보는 하나마키의 시선이 한참을 위로 올라갔다. 느리게 눈꺼풀을 깜박거리는 하나마키의 얼굴에 누군지 기억났다는 표정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마츠카와를 향한 하나마키의 입술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가관이었다.




나 쳐다보던 애.




씨발.

반사적으로 욕을 읆자 하나마키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마츠카와의 입술이 벌어지기 전에 하나마키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너무 빠른 속도에 마츠카와는 눈으로만 하나마키의 뒷모습을 좇았다. 반사적으로 욕을 뱉어버린 입술을 손으로 막았다. 하나마키에게 그렇게 기억됐다는 것 자체가 너무 창피해서 반사적으로 뱉은 육두문자 하나에 당당했던 어깨가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담배를 하나 더 물었다. 뭐라도 물지 않으면 하나마키의 어깨가 눈 앞에 아른거릴 것 같아서.


결국 그 자리에서 담배 세 대를 피운 마츠카와는 담배 냄새를 몸에 가득 두르고 강의실로 발을 들였다. 시커먼 학생들 사이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역시 분홍색의 머리였다. 맨 뒤로 가자는 말을 뒤로하고 하나마키의 옆에 가방을 두고 엉덩이를 붙이자 자신을 향해 올라오는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이 얽혀도 피하지 않았다. 아기 같은 얼굴에 호기심을 가득 담고 있었다. 자신을 쳐다보던 아이로 기억됐으니 대놓고 하나마키만 볼 생각으로 엉덩이를 붙였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입꼬리를 올렸으나 하나마키의 표정에는 반응이 없었다.




너 제대로 보려고.




머리색과 얼굴색이 같아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처음으로 얽힌 시선을 하나마키가 먼저 피했다. 붉어진 얼굴은 짧은 머리 밑으로 여실히 드러났다. 웃고 있는 마츠카와에게 장난 치지 말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입술이 몇 번 뻐끔거렸으나 하나마키의 목소리는 마지막까지 들을 수 없었다. 


붉어진 얼굴은 한 시간 내내 지속되었다. 눈 앞에서 강의하는 교수님을 향해 꽂혀있는 시선이었으나 샤프를 쥐어 필기를 하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끝난 강의에 짐을 챙기는 동안에도 하나마키의 떨리는 손은 책을 몇 번이나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긴 심호흡이 들렸다. 자신의 한 마디에 한 시간 내내 똑같은 반응이라는 사실에 마츠카와는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렸다. 입꼬리가 한껏 내려가 마츠카와를 향한 하나마키의 시선은 원망과 미움 그 사이였다. 바닥에 흥건했던 짐들을 가방 안으로 모조리 쑤셔넣기를 기다렸다는 듯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손을 잡고 강의실 문을 열었다. 




밥 같이 먹자, 하나마키.




낮은 목소리가 다정하게 하나마키를 불렀다. 겨우 진정된 것 같았던 얼굴이 다시 붉게 변해 고개가 떨어졌다. 숨김 없는 솔직한 반응에 마츠카와는 몇 번이고 터지기 직전인 웃음을 가슴 안으로 꾹꾹 눌러야만 했다. 마주앉아 밥을 먹는 와중에도 수십 번은 붉게 변했다. 얼굴이 붉지 않으면 귀가 붉었다. 고개는 식판에 처박은 채 밥만 입으로 밀어넣고 있는 하나마키를 가득 눈에 담았다. 마츠카와에게 향하는 힐끗거리는 시선들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식판은 앞에 두고 턱만 괸 채 자신에게 꽂힌 시선을 거둘 생각이 없어보이는 마츠카와 때문에 먹은 것들이 가슴에서 얹히는 기분이었다. 

숟가락을 내려놓는 순간까지도 시선을 고정시켰던 마츠카와의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뜨거웠다. 식판을 정리하고 같이 발을 맞춰 걷는 순간에도 자신에게 시선이 향해있는 것 같아 하나마키의 얼굴은 식을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항상 혼자 돌아가는 발걸음 옆에 오늘은 다른 신발이 자리를 잡고 같은 속도로 걷고 있다. 마츠카와와 걷는 거리가 이상하리만큼 낯설었다. 





*    *    *





마츠카와는 눈을 의심했다. 같은 하나마키인데 어느 새 키가 조금 더 큰 기분이었다. 한참 내려가는 시선이었으나 허공에서 시선이 걸린 듯 눈이 높아졌다. 여전히 자기 앞에서 얼굴을 붉히는 하나마키는 애기처럼 보였으나 생김새는 달랐다. 골격이 자란 듯 애기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기분이었다. 짧은 시간에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 게 가능한지 마츠카와는 진지하게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싶었으나 내려오는 답은 불가능이었다. 하나마키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얼굴이 붉어지는 일도 점차 줄어들고 반달로 접히는 눈을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수업을 같이 듣고 밥을 먹으며 일상과는 다를 바 없는 생활에 다른 점이 생겼다면 서로가 함께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애기처럼만 보였던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시야에 맞을 정도로 눈높이가 높아졌고 골격도 다른 남자들과 비슷해졌다. 




너, 많이 컸다, 히로.

어? 어.......




말끝을 흐리는 하나마키의 표정이 어두웠다.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자 말을 이었으나 대답 하는 하나마키의 얼굴에선 그림자가 걷히지 않았다. 많이 컸다는 소리 하나가 감정을 뒤흔들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작았다는 말을 뱉은 것 같아 사과했으나 하나마키의 고개는 그저 끄덕임만 존재할 뿐이었다. 같이 발을 맞춰 걷는 동안에도 말 한 마디 오고가지 않았다. 순식간에 냉담해진 분위기에 마츠카와는 수시로 하나마키의 표정을 곁눈질로 확인했다. 드러워진 그림자는 하나마키의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먼저 발걸음을 멈춘 건 하나마키였다. 




이제 나 찾아오지 마, 잇세이.

히로?




터무니없는 소리에 미간을 좁혔으나 하나마키는 진심을 전달하고 있었다. 일그러지는 얼굴이 결국 눈물을 내보냈다.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며 그 자리에서 울어버리는 하나마키의 어깨마저 마츠카와는 감싸주지 못했다. 손을 뻗고 싶었는데 묶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며 단호한 눈빛에서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여기서 이름을 부르는 건 반칙이잖아. 


입술을 깨물며 새어나오는 소리마저 참는 하나마키의 몸이 돌아갔다. 멀어지는 그림자마저 잡고 싶었으나 하나마키의 눈빛은 마츠카와에게 진심으로 다가왔다. 멈춘 다리에 힘을 줘 앞으로 나아가면 충분히 소매라도 잡을 수 있는 거리였으나 흐르는 눈물 사이로 진심을 보였던 눈빛이 돌아선 하나마키의 뒷모습에서도 보였다. 분홍색의 머리칼이 어둠으로 가득 차 결국 시야 안에서 사라졌다. 



찾아오지 말라는 슬픈 말을 뱉은 후, 하나마키는 학교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친구들과 질 낮은 얘기를 주고 받으며 담배를 입에 문 마츠카와에게 하나마키와 함께 한 짧은 일주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 누구도 하나마키를 찾지 않았고 분홍색의 머리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하나마키와 함께 발을 맞출 때 물지도 않았던 담배들이 점점 늘어갔다. 필터를 잘근잘근 씹는 마츠카와의 주머니가 진동으로 울렸다. 진동이 끝나자 사방에서 친구들이 마츠카와를 향해 달려왔다. 물고 있던 담배를 끄기 위해 바닥을 향해 담배를 튕겼다. 떨어지며 약하게 튄 불꽃이 화단의 작은 꽃을 태웠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진동의 원인을 확인한 마츠카와의 얼굴에 햐앟게 질렸다.



[하나마키 타카히로의 장례식이 ○○ 병원에서 있습니다. 함께 위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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