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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HQ

[마츠하나] 어긋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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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키 병




국화 당신은 정말 좋은 친구

수국 이해해 주니 고마워요

상사화 이룰수 없는 사랑,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축축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내리는 빗줄기가 거셌다. 실내마저 축축했다. 올라오는 토기를 막지 못하고 모조리 쏟아냈다. 바닥으로 힘 없이 떨어지는 국화 꽃잎들이 마츠카와를 절망으로 끌어내렸다. 변함 없는 꽃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꽃의 종류라도 바뀌었으면 하고 빌었으나 목을 간지럽히며 입술 밖으로 튀어나오는 꽃잎은 어김없이 국화 꽃잎이었다. 바닥에 퍼지는 흰 꽃잎들이 애처로웠다.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게 괴로웠다. 다시 올라오는 토기에 무릎을 꿇었다. 입술 밖으로 전부 튀어나오는 국화와 수국의 꽃잎들이 마츠카와의 무릎을 적셨다.





*    *    *





어, 마츠카와.





어색하게 웃는 분홍색 머리의 주인공이 손을 올렸다. 항상 마츠카와와 함께 발을 맞췄고 함께 곁에 있었기에 자신의 마음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큰 헛발질이었다. 용기내어 고백한 마츠카와에게 돌아온 대답은 미안하다는 사과였다. 하나마키는 그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마츠카와의 성급한 고백은 결국 입술 밖으로 국화를 토해내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예전과 같은 사이를 유지하고 싶어했던 하나마키는 마츠카와를 피하지 않았다. 그런 하나마키가 불편했고, 불편하지 않았다. 일상적인 하나마키에게 일상으로 대하려는 마츠카와의 노력은 국화 꽃으로 인해 장애물이 생겼다. 하나마키 앞에서 모든 것을 보인 적은 없었으나 그 앞에서 국화까지 토한다면 겨우 이어온 일상으로도 돌아가지 못하리라 판단했다.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에 목을 간지럽히는 꽃잎들도 하나하나 늘어갔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국화 꽃잎이 입 속에서 나가고 싶어 발버둥쳤다.




마츠카와, 어디 아파?




입술을 열면 꽃이 튀어나올 게 분명했다. 쉽사리 입술을 열지 못하는 마츠카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안부를 물으며 마츠카와의 상태를 살피는 하나마키의 걱정은 진심으로 전달되었다. 진심이었기에 마츠카와는 더 괴로웠다. 결국 말 한 마디 붙이지 못한 채 하나마키를 등지고 달렸다. 한참을 달렸다고 생각했을 때 입술을 열자마자 국화 꽃이 무더기로 튀어나왔다.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구역질 소리가 혐오스러웠다. 버거운 토악질 끝에 남은 건 흰색의 국화 꽃잎이 전부였다. 거센 토악질에 눈물샘이 자극되어 흐르는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거세게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았다. 두꺼운 빗줄기에 토해낸 국화 꽃잎마저 축축하게 젖어들어 흙에 파묻혔다. 



젖어버린 머리로 교실 문을 연 마츠카와의 상태는 누가 봐도 최악이었다. 젖은 교복과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에 결국 마츠카와는 처음으로 조퇴증을 손에 쥐었다. 하나마키를 마주하면 또 다시 올라올 것 같은 토기에 빠른 걸음으로 학교를 나섰다. 우산을 펴 초라한 모습을 감췄다. 온몸이 물을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중력으로 잡히는 기분까지 엄습했다. 입 밖으로 꽃을 토해내기 시작하면서 마츠카와는 뭘 제대로 먹을 수도 볼 수도 없었다. 승부욕에 가득 차 공을 쥐고 친구들과 했던 배구도 나가지 못한 지 일 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민트색의 경기복이 가지런히 개여 있었으나 마츠카와는 경기복을 입고 연습에 들어가지 못했다. 커다란 우산에 자신을 잔뜩 숨긴 채 교문으로 향했다. 




마츠!




빗소리에 묻혀 아무것도 못 듣기를 바랬으나 마츠카와의 귀는 하나마키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끌어당겼다. 우산을 조금 더 밑으로 잡아당겼다. 얼굴을 보면 밀려오는 토기를 참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커다란 우산 안으로 마츠카와의 상체가 반이나 가려졌다. 이름을 부른 하나마키의 입에서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답이 없는 마츠카와를 기다리는 건지, 우산으로 조금씩 숨어버리는 마츠카와에게 등을 돌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마츠카와의 몸은 하나마키를 향해 돌아가지 않았고 한참을 우두커니 몸을 지탱하고 있었던 두 다리가 조금씩 앞으로 향했다. 등 뒤의 분홍 머리의 주인공을 볼 자신조차 없었다. 마츠카와의 발걸음은 느렸다. 느렸지만 하나마키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뒤에선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없는 자신에게서 등을 돌렸다고 판단했다. 그래야만 마츠카와의 맘이 편할 것 같았다.



무거운 걸음을 겨우 옮겨 집 문을 열자마자 입에서 쏟아지는 국화와 수국 꽃잎에 마츠카와는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눈물을 바닥으로 떨궜다.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꽃잎들은 무서울만큼 희고 예뻤다. 지나가는 풍경으로 봤으면 아름다운 그림이었을 꽃잎들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 자체로 혐오스러웠다.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아린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마츠카와는 젖어버린 몸을 씻어내리며 몇 번이고 꽃잎들을 입술 밖으로 뱉어냈다. 희여멀건 잎들은 초라하게 화장실 바닥에 떨어졌다. 따뜻한 물줄기도 마츠카와를 감싸주지 못했다. 밀려드는 오한에 마츠카와는 고개를 떨궜다. 머리속을 가득 채운 분홍 머리의 소년이 고통스러웠다.




몇 번이고 문 너머의 마츠카와를 불렀지만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에게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열린 문 사이로 따뜻하게 웃어주며 자신을 맞을 마츠카와는 세상에 없었다. 하나마키는 더 이상 문 두드리기를 포기했다. 자신을 마주했을 때부터 마츠카와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조퇴라는 말을 듣자마자 마츠카와의 발자국을 밟아 교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하지만 자신을 향하기는 커녕 동상처럼 서 있다가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어 멀어지는 마츠카와가 너무나도 낯설었다. 하나마키는 모든 수업이 마치자마자 마츠카와의 집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돌아서는 몸이 너무나도 초라했다. 


자고 있을 거야. 너무나도 아프니까, 자고 있는 중일 거야.


자신을 묘하게 피하는 느낌이 들었던 하나마키는 불안한 감정을 피할 수 없었다. 멀어지기 싫어서 친구처럼 대했다. 마츠카와를 잃고 싶지 않아서 친구처럼 대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츠카와와 하나마키 사이에 선을 그은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같이 즐겼던 배구도 그만둔다고 할 것 같았다. 고백이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에게 진심이고 싶었다. 그렇기에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고백했고, 이후로 말라가는 마츠카와를 보는 하나마키의 감정도 좋지 않았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맥없이 몸이 돌아갔다. 모습이라도 보여줬으면 그나마 마음이라도 놓고 떠나겠는데 굳게 닫힌 문은 하나마키를 허락하지 않았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가 우산 안으로 들어왔으나 하나마키는 막을 수 없었다. 얼굴에 흐르는 물기가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분 할 감촉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마츠카와의 반을 찾은 하나마키는 마츠카와가 등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었다. 아예 텅 비어버린 마츠카와의 자리는 처음부터 마츠카와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체육관에 나오지 않은 시간은 꽤 길었으나 학교에마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하나마키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의 연락조차 받지 않는다는 마츠카와의 집 앞으로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으나 돌아오는 건 침묵이었다. 해가 떠도, 비가 와도 마츠카와의 문은 열릴 생각을 안 했다. 문 앞에서 특별하게 하는 말도 없었다. 하나마키는 그저 마츠카와의 얼굴이 그리웠고 보고 싶었다. 다정하게 웃어주고 자신을 향해 건네던 낮은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마키에게 운명은 잔혹했다. 




그렇게 이 주일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하나마키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이 주일이 지나고 마츠카와는 멀쩡한 모습으로 학교를 찾았고 멀쩡하게 체육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맛층!




발랄한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트렸다. 여어, 낮은 목소리가 체육관에 울렸다. 분홍색 머리의 어깨가 작게 떨렸다. 햐앟게 질리고 외로워보였던 마츠카와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과거의 마츠카와로 돌아와 다정하게 웃고 말을 건넨다. 하나마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보고 싶었냐며 장난까지 치는 마츠카와가 원망스러웠다. 올라오는 토기에 하나마키는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렸다. 마츠카와 앞에서 차마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가 없었다. 하나마키에게 변화가 찾아온 건 최악의 변화였다.



쏟아지는 국화 꽃잎들이 하나마키를 절망으로 빠트렸다. 국화 꽃잎과 섞여서 나오는 상사화는 하나마키를 절망으로 빠트렸다. 마츠카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츠카와의 고통이 이런 것이었을까. 다시 밀려오는 토기에 입을 틀어막았으나 막을 수 없었다. 입에서 하나씩 떨어져 물 안으로 가라앉는 꽃잎들이 애처로웠다. 수도꼭지를 열어 입을 헹궜으나 목을 간지럽히는 꽃잎들은 물러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체육관 안에서 다시 경기복을 입고 몸을 푸는 마츠카와를 눈에 담자기 목을 간지럽히던 꽃들이 다시 목 밖으로 기어올라왔다. 공기를 삼켜가며 겨우 참고 연습에 임했으나 좋지 않은 컨디션은 결국 하나마키에게 체력의 한계라는 것을 불렀다.




맛키, 어디 아파?




걱정스런 주장의 목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아픈 게 아니었다. 그저 올라오는 꽃잎들을 참을 수가 없을 뿐이었다. 주장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부원들이 하나씩 하나마키의 옆으로 다가왔다. 안색을 살피며 하나마키의 상태를 확인하는 부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괜찮냐는 목소리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마츠카와의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삼켰던 공기마저 올라오는 느낌에 하나마키는 괜찮다는 고개만 끄덕이며 화장실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입술을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꽃잎들이 쏟아졌다. 자극된 눈물샘이 눈물을 불렀다. 흐르는 눈물들이 자신이 흘리는 눈물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시 올라오는 토기에 변기에 머리를 박았다. 쏟아지는 꽃잎들이 증오스러웠다.




히로.




얇은 문 너머로 낮은 목소리가 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대답하고 싶었지만 하나마키의 입은 이미 꽃잎들로 가득해 대답할 수 없었다. 하나마키의 목소리대신 밀려오는 구역질이 마츠카와의 부름에 응답했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하나마키는 문을 열 수 없었다. 혐오스러웠다. 그저 친구라고 생각했으면 그 감정은 일직선이 되었어야 했는데 상승세를 타고 말았다. 히로. 다시 이름을 부르며 두드리는 문을 거칠게 열었다. 걱정스런 얼굴의 마츠카와 앞에서 결국 하나마키는 국화와 상사화를 뱉었다. 바닥 가득 퍼지는 꽃잎들이 볼품없었다.




히로, 너.

너 이제 나 안 좋아해?




울먹이는 목소리가 원망을 동반했다. 상사화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뜻하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고, 입에서 나온 상사화를 본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둘은 정말로 친구이고, 마지막까지 이어지지 못한다고 상사화가 말하고 있었다. 밀려오는 눈물을 쏟아내며 하나마키는 다시 바닥에 상사화의 꽃잎을 뱉었다. 원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마츠카와를 보던 하나마키는 자신이 뱉어낸 꽃잎들을 짓밟으며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눈 앞에 국화와 상사화의 꽃잎이 가득했다. 마츠카와는 마지막으로 입에 남아있던 보라색의 크로카스 꽃잎을 하나 꺼냈다. 입꼬리가 허탈하게 올라갔다.



보라색 크로카스 당신은 나를 사랑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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