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켄 전력 주제 반지 뱀파이어AU
네코마,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며 지나간 자취조차 자신도 모르게 하라는 뜻으로 정한 이름이었다. 칭하는 명칭처럼 일을 처리하는 것에 있어서 남겨지는 불순물들이 없었다. 먹잇감을 정하면 숨긴 발톱을 드러내 먹잇감에 발톱을 박았다. 네코마라는 이름의 새로운 집단은 이미 터를 잡고 있는 다른 흡혈귀 무리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터를 쟁취하기 위한 전쟁은 시도하지 않았으나 일원들이 상처를 달고 돌아오면 네코마는 전체가 움직였다. 사냥은 일주일에 한 번, 모두가 시식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이. 다만, 아이가 있으면 건드리지 않을 것. 아이는 커서 우리에게 양식이 된다. 네코마를 이끄는 쿠로오 테츠로의 철칙이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나 입꼬리가 올라가면 사방에서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리더라는 관직으로 사냥에는 참전하지 않는다. 다만, 사냥 방법이 비매너적이어도 쿠로오는 관여하지 않았다. 네코마라는 이름에 걸맞게 구성원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간단하게 의식만 빼앗았다. 남겨지는 더러운 불순물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무엇을 주식으로 먹는다고?
혈액.
그래서 우리가 뭐라고?
혈액.
그렇지, 막힘없이 흐르고 와. 막히면 우리가 죽는다. 터무니없는 멘트에 리더의 위엄을 담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구성되었다. 핏빛이 도는 눈동자들이 빠르게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담배를 이빨 사이에 끼워 불을 붙였다. 매캐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심장이 굳어버린 몸에 숨을 쉬는 것조차 사치였으나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 연기와 함께 짧아진 담배를 이빨 사이에서 꺼내자 하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늙은 사람부터 시작해서 반항마저 심했을 것 같은 성인까지 다양했다. 중앙에 인간들을 내려놓자 어둠 속에서 그르릉대는 소리가 가득했다. 인간들에게서 나는 달콤한 냄새가 그들의 미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시는 분들께 인사.
뿌리가 어두운 노란 머리의 아이를 들어 품에 안자마자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목마른 자들은 여린 피부에 송곳니를 박고 따뜻한 피를 들이켰다. 쿠로오는 사냥감 사이에서 빼온 작은 소년의 팔목을 입술로 가져갔다. 뱀파이어의 감각은 인간의 네 배였다. 고요하게 감긴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소년을 감싼 쿠로오는 식사에 열중한 조직원들을 두고 깊은 곳으로 몸을 돌렸다.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도 모자라 숨마저 가쁘다. 의식이 없는 척을 포기한 소년은 결국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자신에게 닿는 손이며 숨이 차갑다 못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살려주세요.......
목소리마저 먹어버린 목을 원망했다. 두려움을 가득 담은 몸은 움직임조차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소년은 품 안에 들어왔으나 오히려 한기를 들이마셨다. 추워. 온기를 찾아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이 구역에 온기는 자신의 체온뿐이라는 것을 소년이 인지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차가운 곳에서 벗어나도 차가웠다. 켄마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자신을 원망했다. 발걸음 소리만 제대로 인지했어도 정신마저 잃고 무기력하게 끌려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뿐하게 자신을 옮긴 남자에게선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머리에서 빨간불이 울렸다.
이름이 뭐야?
무섭도록 다정하게 물었으나 켄마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살려달라는 단어 하나였다. 살려달라는 게 이름이 아닐까 하는 진지한 고민은 오 분도 못 가 산산조각이 났다. 심장이 굳어 온기가 도는 인간하고 다르다고는 하지만 머리는 빠르게 굴러갔다. 흔들리는 몸에 손을 대었으나 소년은 발작적으로 반응했다. 처음으로 시선이 맞닿았다. 핏빛 눈동자와 노란빛의 눈동자가 서로를 담았다. 쿠로오의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코즈메 켄마. 한 글자 한 글자 눈으로 읽어간 쿠오로는 입술을 벌렸다.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나자 켄마는 눈을 감았다. 차라리 숨이 끊어지는 게 최상이라고 최면을 걸었다.
켄마.
나이가 어린 소년은 자신의 고유명사에 쉽게 반응했다. 단순하게 먹잇감이 아닌 인간으로 직급이 올라갔다. 달콤한 냄새가 미각을 자극했으나 쿠로오는 이빨을 박을 생각조차 없었다. 리더의 말은 곧 네코마 안의 법. 인간을 살려둬도 달콤한 냄새에 일찍 죽겠다는 편견을 깨트렸다. 핏빛 눈동자들은 노란색의 눈동자만 보면 반달 모양으로 접혔다. 켄마는 땅 밑의 세계와 해가 뜬 시간을 동시에 가진 유일한 인간이 되었다. 온기를 느끼며 사람들 사이에서 끼어 생활이 다시 가능했고 해가 사라지면 네코마를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땅 밑에 있어도 네코마의 일원들 전부를 마주하는 건 힘들었다. 켄마는 땅 밑에서 벗어나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구는 쿠로오와 시간을 보냈다.
켄마, 여기에 평생 있는 거지.
평생이라는 단어가 낮설었다. 인간의 시간은 흐른다. 혈액이 몸을 돌고 심장이 뛴다.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생겨나고 죽고를 반복한다. 뼈가 자라고 눈과 땅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도 한다. 차가운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켄마였다. 그래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파란색 게임기만 손에 쥐고 게임에 몰두했다. 대답이 없는 입술만을 보고 있던 쿠로오는 켄마의 손에서 반짝이는 금속에 시선을 잡혔다. 평범한 금색의 고리가 켄마의 왼손 약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쿠로는 평생을 그 얼굴로 사는 거잖아. 내 시간만 흐르고.
서글픈 대답이 돌아왔다. 얼굴 근육에는 미동이 없었으나 목소리에 묘하게 슬픔이 풍겨왔다. 해가 만발한 지상에서는 모두가 흐르는 시간을 소유하지만 빛이 없는 지하에서 켄마의 시간이 혼자만 흐르고 있다는 건 모두가 침묵하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골격이 눈에 띄게 변화했다. 처음 살려달라며 몸을 움츠린 소년은 없었다. 게임기를 잡고 있던 왼손을 잡아채자 바닥으로 추락한 게임기와 함께 노란색 눈이 핏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이건 뭐야?
엄마가 주셨어.
반지. 짧은 단어에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쿠로오는 망설임없이 켄마의 왼손을 잡아 손가락에 입술을 맞추고 자리를 잡고 있던 반지를 빼 약지를 입 안으로 감췄다. 혀마저 차가워. 축축했지만 숨어버린 손을 꺼내지는 않았다. 한참을 가지고 놀던 쿠로오는 켄마의 손가락을 자를 기세로 깨물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결국은 켄마의 약지에 선을 그었다. 이빨자국마저 선명하게 난 켄마는 반사적으로 손을 당겼다. 이빨 사이에 있던 손가락에 선이 그어졌다.
여기에, 인간들이 약속하는 금속 끼워 줄게, 켄마. 나랑 살자.
금속이 뭔지 모른다. 쿠로오는 약지가 상징하는 것만 알고 있었다. 작은 상처로 금방 멈출 피였으나 상처 안으로 침입한 뱀파이어의 독은 온몸을 순식간에 정복했다. 근육이 뒤틀리는 고통에 켄마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손가락에 그어진 선들이 스스로 봉합되기 시작했고 지하에 퍼지던 심장소리가 사라졌다. 네코마가 즐기던 인간의 온기마저 자취를 감췄다. 약지의 선명한 이빨 자국만 남겨진 채, 차가운 피부를 가진 달빛의 눈이 지하에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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