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이와 전력 주제: 오케스트라
기다란 손가락이 피아노 위에서 춤을 추는 시간엔 이와이즈미의 입꼬리도 함께 올라갔다. 건반이 눌려 내는 소리와 어우러저 허공에 긋는 오이카와의 선이 퍽 아름다웠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하는 콘서트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이 음악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아주 잠시 선율을 멈춘 이와이즈미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지막 화음이 어우러지면, 이 콘서트는 막을 내린다. 오이카와를 바라보는 눈빛에 물기가 서려있었다. 곡의 마지막을 함께 장식한 악기들에게서 울음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건반을 누른 이와이즈미의 고개가 떨어졌다. 마지막 선이 그어짐과 함께 콘서트는 막을 내렸다.
이와 쨩.
콘서트가 막을 내리고 커튼이 내려왔으나 관객들에게 허리를 숙인 이와이즈미는 미동이 없었다. 바닥을 적시는 물방울들이 하나씩 늘어갔지만 이와이즈미는 주저앉지도, 허리를 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마지막으로 인사한 모습 그대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전부 철수할 때까지 못이 박힌 듯 제자리에 서 있었다. 오이카와의 손이 등에 얹혀지자 기다렸다는 듯 이와이즈미의 무릎이 무너졌다.
이와 쨩.
오이카와...... 나, 나 피아노 더.......
치고 싶어. 오이카와의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품으로 몸을 끌어당긴 오이카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와이즈미의 아픔을 전달 받는 것이 전부였다. 비명이라도 지르면 속이라도 편할까. 이와이즈미 어깨의 들썩임은 점점 심해졌으나 소리는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이카와의 무릎이 젖어들었다. 무대에는 비가 왔다.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무대에서 서로의 비를 전부 맞아주었다.
다음 날, 피아니스트 이와이즈미의 은퇴 소식이 거리를 장식했다. 신문의 헤드라인도, 예술을 위한 프로그램 전부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이름을 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마지막 콘서트라는 타이틀도 달지 않은 채 콘서트를 마친 젊은 피아니스트 이와이즈미의 은퇴 소식은 음악계를 뒤집어놓기 충분했고, 마지막이라고 예측도 못한 마지막 콘서트를 함께 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자 친구들에게도 배신이라는 단어를 안겨주었다.
야, 오이카와, 너 알고 있었어?
순식간에 멱살이 잡혔다. 이와이즈미를, 너 알고 있었냐고! 하나마키의 목소리는 분노보다 절규에 가까웠다. 마지막 콘서트를 함께 했다는 사실만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 전부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멱살을 잡힌 오이카와의 입술은 벌어질 줄을 몰랐다. 굳게 닫혀 열릴 생각을 안 하는 입술은 입꼬리만 점점 올렸다. 지휘자의 소름끼치는 웃음에 잡힌 멱살이 서서히 풀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혼의 동반자와 함께 진행한 콘서트의 끝에 남아버린 건 피아니스트가 없는 지휘자 혼자였다. 떨귀진 볼을 타고 흘러 턱끝에 매달린 눈물이 애처로웠다.
망할카와, 안 꺼져?
아, 이와 쨩. 한 곡만. 어? 한 곡.
링겔 꼽았는데 뭐, 피아노를 쳐? 베개를 쥐어 던지기 직전까지 올렸다 느껴지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건반도 가져다 준다는 말에 이와이즈미는 잠시나마 흔들렸으나 다시는 미련조차 가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이와이즈미의 거부보다 오이카와의 힘이 더 강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병문안을 핑계로 삼아 곡을 하나만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하고 항상 혹을 하나 달고 나간다. 다시 건반에 손을 올리면 병실을 뛰쳐나가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 이와이즈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싫다는 말만 백 번은 했다. 오이카와는 백한 번을 찾아왔다.
꺼져. 너 다시는 오지 마.
오이카와의 등이 보이면 항상 하는 소리였으나 오이카와는 마지막 말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없는 병실은 무섭도록 조용했다. 숨을 돌린 이와이즈미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당겼다. 하얀 건반에 손을 올리는 상상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다시 건반을 눌러 음악을 만들고 관중들 앞에서 자랑스레 선보이고 싶었다. 상상의 콘서트가 끝나면 이와이즈미의 얼굴은 젖어있었다. 한 달은 피아노의 피읖 자도 듣기 싫어 음악계 종사자들의 면회는 일절 받지 않았다. 이와이즈미의 피아노 미련은 쉬이 떨쳐낼 수 있는 미련이 아니었다. 근 10 년을 건반 앞에서 지냈다. 겨우 벗어났나 싶었는데 오이카와가 억지로 꺼내버렸다.
망할카와.
멈췄던 그림이 다시 재생되었다. 이와이즈미의 손가락은 건반에서 춤을 췄다. 그 중앙에는 지휘자, 오이카와가 서 있었다. 피아노에 몸을 맡긴 이와이즈미의 얼굴은 구겨졌다. 상상이 어두워지고 비가 쏟아졌다. 아니, 이와이즈미는 비가 쏟아져서 자신의 시야가 흐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다시 문을 열었다. 자신에게 향하는 눈빛에 소름이 돋았지만 문을 닫고 발걸음을 돌리는 법은 없었다. 문을 닫자 머리로 공책이 날아왔다. 미간을 좁히며 공책을 든 오이카와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약 여덟 마디가 그려진 작은 악보였다.
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야. 앞은 네가 알아서 해.
그리고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 마. 오이카와를 보지 않은 이와이즈미의 목소리를 평소보다 한 톤 낮아져 있었다. 긴 시간을 이와이즈미와 보냈던 오이카와는 이번만큼은 저 목소리에 진심을 느꼈다. 이번만큼은 오이카와도 싫다며 애처럼 굴 수 없었다. 대답이 없는 오이카와에게 고개를 돌렸으나 이미 이와이즈미의 병실에 오이카와는 없었다. 진심 전달이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한 이와이즈미는 무거운 눈꺼풀을 닫았다. 이제 정말로 귀에서 피아노의 피읖 자도 들을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악보에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었으니 지휘자도,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제대로 소화할 거라고 믿었다. 팔에 박힌 바늘을 빼냈다.
오이카와가 지휘하는 콘서트의 표는 빠른 시간에 매진되었다. 대기실은 악기들의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정말로 악기가 울고 있는 느낌이야, 이와 쨩. 차례를 읽는 오이카와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웠다. 마지막으로 무조건 넣어야 한다는 곡의 작곡가는 이와이즈미 하지메로 적혀있었다. Mon amour. 화려한 조명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무대 가운데로 걸어나간 검은색 정장의 오이카와는 조명을 받아 더 빛이 났다. 박수가 쏟아졌고 허리를 숙였다. 오이카와는 나즈막히 속삭혔다. 내 대답이야, 하지메.
고마워, 오이카와. 피아노에 손을 대고 너를 만나고, 항상 미워하는 것처럼 대했지만 너를 사랑하고 있어. 아마 곡의 해석이 끝난다면 내 인생의 결말이 너에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토오루, 고마워. 함께 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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