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HQ [보쿠아카] 잊다 센린 2016. 3. 22. 21:47 모바일은 재생버튼 눌러주세요.약속할게요, 보쿠토 씨.자기를 잊지 말라며 부원들 한 명 한 명을 잡으면서 체육관이 떠나가라 우는 보쿠토의 마지막 상대는 아카아시였다. 평소와 똑같은 표정으로 응시하는 눈빛에 서러움을 느낀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이름을 부르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크게 한숨을 내뱉은 아카아시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보쿠토의 손을 꼭 잡았다. 새끼손가락을 눈앞에서 흔들더니 멍한 표정의 보쿠토의 새끼손가락에 고리를 만들어 자신의 손가락과 연결시켰다. 잊지 않기로 약속할게요. 대학에 가서 더 빛을 발하세요, 보쿠토 씨. 아카아시는 삼 학년이 되었고 보쿠토는 대학에 합격해서도 배구를 계속했다.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스파이커의 실력은 뛰어난 사람들을 만나 날로 늘어갔다. 고등학교 3 학년이 된 아카아시는 배구보다는 공부에 조금 더 집중하길 원해 코치의 역할로 빠졌다. 학생 신분이라 코치랄 것도 없이 경험이 많은 학생으로 빠져 후배들과 신입생들에게 토스를 해 주고 자세를 잡아주는 게 전부였다. 가끔은 공이 그리워 손이 허전하고, 보쿠토의 시원한 스파이크가 그리웠지만 보쿠토와 같은 대학에 가면 다시 그의 세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목표 하나로 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늦게까지 펜을 잡고 작은 글씨를 보고 있었더니 눈앞이 멍했다. 늦은 밤, 눈을 비비며 걸음을 옮기는 아카아시의 옆으로 익숙한 형체가 지나갔다. 홀린듯이 고개를 돌린 아카아시는 그토록 부르고 싶었던 이름을 입에 담았다.보쿠토 씨.남자의 걸음이 멈추고 고개가 돌아갔다. 은색의 머리칼, 노란색의 눈, 아카아시가 아는 영락없는 보쿠토였다. 아카아시는 반가운 마음에 몸을 돌렸지만 뒤이어 느껴지는 낯선 기운에 표정을 굳혔다. 쌍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똑같은 외모였지만 보쿠토에게 쌍둥이가 없는 사실을 아는 아카아시는 다가오는 묘한 기운에 남자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보쿠토를 닮은 남자 역시 눈에 보이는 교복 입은 학생이 초면이라는 표정을 지었다.누구?보쿠토 씨가 아니라고 판단을 내린 아카아시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너, 나를 어떻게 알아? 같은 목소리에 같은 외모,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건넨 말. 정말로 보쿠토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현실에 고개를 들었다. 아카아시 눈에 보이는 사람은 보쿠토가 맞았으나 자신에게 누구라고 되묻는 게 말이 안 되었다. 얄궃은 장난이기를 바랬다. 보쿠토라는 성이 제발 흔하기를 바랬다. 보쿠토 코타로. 나즈막히 이름을 부르자 남자가 반응했다. 아카아시는 작은 탄성을 뱉었다. 미래가 무너진 기분이었다.소문을 따라 보쿠토의 학교에서 정황을 들은 아카아시는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사고가 났다. 부분적으로 기억을 잃었는데 그게 아카아시와, 후쿠로다니와 함께 했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사고를 당한 이후로 산만한 보쿠토는 없었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스파이크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지만 성격이 딴판이 되어버린 보쿠토를 처음에 대학 부원들도 적응이 힘들었다고 했다. 보쿠토와 함께 배구를 하고자 같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샤프를 쥐고 책을 펼쳤는데 미래가 무너진 기분이었다. 우렁찬 목소리도, 스파이크를 성공하고 나서의 특유의 고함도 이제는 없었다. 사고를 당하고 보쿠토는 곧게 솟아있던 머리도 차분하게 내렸다. 앞에 있는 보쿠토 코타로라는 남자는 보쿠토가 아닌 느낌이었다.그러니까, 없어진 기억에 네가.고개를 한 번만 끄덕였다. 기대는 없다고 현실이 말하고 있었으나 보이지 않는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피가 나도록 잡고 싶었다. 교복차림의 아카아시는 자기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보쿠토 앞에서 한 번도 작아진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작은 꼬마처럼 느껴졌다. 아니, 맹수 앞의 초식 동물처럼 느껴졌다. 긴 침묵이 둘 사이에 머물렀다. 미안. 오랜 정적 끝에 보쿠토가 건넨 대답은 짧았다. 미안, 정말 모르겠어.아.멋쩍게 웃는 보쿠토를 향해 아카아시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후쿠로다니 소속을 아무도 기억을 못 한다. 예상했던 결과였고 현실은 다를 게 없었다. 연습 하러 간다며 먼저 일어난 보쿠토를 잡지 못하고 아카아시는 한참을 앉아있었다. 당신의 세터는 나였는데, 세터마저 잊는 윙 스파이커가 세상에 어디에 있어. 시야가 흐러졌다. 고개를 떨군 아카아시의 어깨가 작게 떨렸다. 더 넓은 세상에서 빛을 발하라고 그랬는데, 빛을 보기 위해 기억을 잃으라는 뜻은 아니었다. 무릎이 천천히 젖어들어갔다.수업이 전부 끝나고 잠깐의 시간 동안 아카아시는 체육관에 들렀다. 후배들을 코치하고 토스를 조금 올려줄 생각이었다. 체육관이 소란스러웠다.아카아시 선배!문을 열자마자 코트가 눈에 들어왔다. 찰랑대는 은색 머리칼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보쿠토가 깔끔하게 스파이크를 성공시키고 아카아시를 향해 뛰어갔다. 보쿠토 씨가 왜 여기에.네가 말한 후쿠로다니가 궁금해서 왔어.보쿠토 씨.아카아시라고 그랬지. 얘네 왜 이렇게 나랑 죽이 맞지?물 만난 고기처럼 신명나게 뛰어다니며 스파이크를 실패한 적이 없다는 보쿠토의 목소리는 한 톤이 높아져 있었다. 그야, 후쿠로다니는 당신과 함께 배구 했으니까요. 아카아시는 말을 삼키고 코트로 들어갔다. 상황을 아는 이 학년들은 갖은 변명을 대며 아카아시를 보쿠토와 같은 코트 안으로 밀었다. 휘슬이 울리고 네트 밖으로 공이 넘어갔다. 한 점을 상대편에게 준 아카아시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예전의 보쿠토였으면 기합을 넣었을 테지만 무섭도록 차분한 보쿠토의 모습에 아카아시는 다시 현실을 인지했다. 토스하고 싶어. 아카아시의 표정이 바뀌었다. 네트 안으로 공이 넘어왔을 때, 이 학년은 몸을 던져 공을 살렸다. 아카아시는 자연스럽게 세터의 자리에서 토스를 준비하며 공을 돌아봤다.아카아시!!!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영락없는 예전의 보쿠토 목소리였다. 누구에게 토스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은 이미 아카아시의 손을 떠나 보쿠토에게 향하고 있었다. 방금, 보쿠토 씨 목소리였는데. 보쿠토의 손에 닿은 공은 시원하게 상대편 코트 바닥에 닿았다. 소리도 시원하게 질러주면 고맙겠지만 보쿠토는 그저 씨익 웃으며 아카아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좋은 토스야, 아카아시!같은 학교를 다녔을 때처럼 자신을 대하며 어깨를 툭툭 치자 아카아시는 서러움이 울컥 밀려왔다. 꼴사나워. 경기를 뿌리치고 수돗가로 달려간 아카아시는 물을 틀고 머리를 처박았다. 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머리는 차가웠지만 볼은 뜨거웠다. 당신을 잊지 말라고 울고불고 체육관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더니, 왜 당신이 우리를 잊어요. 물을 잠근 아카아시는 허리를 천천히 폈다. 다 울었어? 눈앞으로 불쑥 수건이 들이밀어졌다. 실은, 너 만났을 때 이미 알고 있었어, 아카아시.퇴원을 했을 때, 졸업사진을 봤어. 너하고 찍은 게 제일 많더라. 차분하게 이어가는 목소리가 보쿠토였지만 보쿠토가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예전처럼 애같았으면. 아카아시는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고개를 떨군 아카아시 어깨에 팔이 걸쳐졌다. 무거워요. 작게 읊조렸지만 억지로 쳐내지 않았다. 우리 학교로 와. 그때는 네가 아는 보쿠토로 있을게. 약속해.망할, 보쿠토 씨. 기억도 없으면서 내가 아는 보쿠토로 있는다는 약속은 왜 해요. 수건으로 얼굴을 감쌌다. 눈 부분이 젖어들었지만 보쿠토는 어깨에 두른 팔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러니까 꼭 우리 학교로 와, 아카아시. 다정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쿠토라는 것을 알기에 아카아시의 눈물은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는 손길에 머리에서 수건을 떨궜다. 분명 눈이 붉어서 꼴사나운 모습이겠지만 아카아시는 고개를 돌렸다.보쿠토 씨, 당신은 진짜.짜증나요. 에? 아카아시! 어깨의 팔을 뿌리치고 체육관을 향해 옮기는 발이 가벼웠다.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공백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새창열림) '글 > HQ'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로켄] 낙인 (1) 2016.04.03 [쿠로켄] 연인을 풀어주는 방법 (0) 2016.03.27 [오이이와] 마지막 악보 (0) 2016.03.26 [오이이와] 빈자리 (2) 2016.03.24 [쿠로켄] 너는 어디에 (1) 2016.03.19 '글/HQ' Related Articles [쿠로켄] 연인을 풀어주는 방법 [오이이와] 마지막 악보 [오이이와] 빈자리 [쿠로켄] 너는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