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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HQ

[보쿠아카] 등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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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하나] 松花(http://tomine.tistory.com/69) 의 앞부분을 읽어주시면 설정을 좀 더 자세하게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저주를 받아 괴물이 되어버린 몸을 숨겼다. 눈을 맞추고 삶과 미래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생명은 같은 공통점을 가진 형제들이 유일했다. 몸에 익숙해지고 생활에 익숙해지려 생김새를 가지고 농담도 두어 번 던졌으나 끝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만 흘릴뿐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보이던 마츠카와마저 함께 의지하던 삶을 버리고 떠나 두 명의 형제만 남게 된 땅 끝에선 공허한 공기만 맴돌았다. 숨이 멈추는 것이 싫어 도망치는 인간뿐 아니라 의도 없이 지나가는 동물마저 시선이 얽히면 모두 심장이 멈추고 석상으로 변화시키는 눈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경멸이라는 감정을 알 수 없는 생명마저 심장을 멈추게 만드는 눈이 증오스러웟다. 세상의 빛을 보기를 포기한 아카아시는 시야를 막고 눈을 가렸다. 아카아시의 시야가 가려지면 주위에서 지저귀던 새들의 노랫소리도 멈추지 않았고 손 끝에선 자연이 흘러들어왔다. 밤이 깊어지면 안대를 내려놓고 달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분수에 넘치게 눈에 담아도 색을 잃고 딱딱하게 굳어지지 않는 유일한 존재. 시야가 흐려지기를 반복했으나 달을 향해 치켜든 고개는 내려가지 않았다.


달이 뜨면 고요해지는 세상을 눈으로 담고 귀로 들었다. 곳곳에서 우는 생명들은 아카아시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노랜 뱀의 눈은 달빛을 받아 유난히 빛났다. 아름다운 눈동자를 탐내기엔 잔인한 결말을 몰고 왔다. 커다란 물체가 아카아시의 달을 가리는 가 싶더니 순식간에 얼굴을 덮쳐왔다. 부드러운 깃털덩어리를 급하게 얼굴에서 떼어놓고 안대를 찾는 아카아시의 눈 앞에선 은색 깃털을 자랑하는 커다란 부엉이가 눈을 감은 채 날개를 펼쳤다. 온기가 느껴지는 생명체는 아카아시의 눈 앞에서 석상이 되어버리지 않았다.






"눈을 감고 나는 건, 다시는 시도하지 말아야겠어!"






새벽의 고요함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 몇 번 꿈틀대던 깃털은 순식간에 사람의 형태를 잡아갔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커다란 날개를 가진 깃털 사이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카아시를 돌아보는 눈꺼풀은 여전히 닫혀있었다. 안대를 두른 아카아시의 행동에 맞춰 노란 눈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워진 시야로 느껴지는 가까운 온기에 자연스럽게 손을 올렸다. 맞닿는 손 끝에서 부드러운 깃털의 촉감이 전해졌다.






"눈 보고 싶은데, 안 되겠지."
"네."
"아, 너무 단호하잖아!"






고요한 새벽의 정적을 모조리 깨버리는 목소리에 사방에서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맞닿은 손이 깃털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 서로를 등지고 앉은 아카아시의 얼굴에서 안대가 내려왔다. 달로 향하는 눈이 빛을 받아 재차 빛났다. 따뜻한 온기가 등 뒤에서 전달되었다. 부엉이는 이상으로 말을 걸지도 않았다. 서늘한 새벽, 자신의 온기만 나눠주며 아카아시 뒤에서 밤하늘만 눈에 가득 담고 있었다.


아침 해가 모습을 드러내가 등에서 느껴지던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방이 은색 깃털이 흩뿌려졌다. 날개짓 소리가 들렸으나 눈을 마주치며 작별인사조차 할 수 없었다.






"안녕히 가세요."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소리와 함께 눈 앞에 은빛 깃털이 흩날렸다. 그제서야 뒤를 돌아버는 아카아시의 눈에 커다란 부엉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서늘한 공기를 데워주고 꿈처럼 사라졌다. 저주받은 눈을 가지고 그 누구의 눈조차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등 뒤에 온기를 두고 사라진 부엉이만큼은 더욱 지키고 싶어졌다. 쉽게 마음을 의지해버린 상황이 부끄러웠다. 외로우니 쉽게 마음을 주기도 하네. 바닥에 흥건한 깃털을 하나하나 주워들었다. 은빛의 깃털 한 장 한 장에 쓰여진 단어들은 모두 같았다.
보쿠토 코타로.












* * *











"에, 그러니까, 부엉이?"






편하게 눈을 감기 직전에 이야기를 나누던 형제에게 새벽에 함께했던 부엉이를 얘기했다. 쿠로오의 표정의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눈을 저주하며 동굴 주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뿌리를 내린 아카아시와는 다르게 쿠로오는 살아야 언젠가는 다시 재회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입으로 가져가는 모든 것들을 찾아다녔다. 소문에 훤했고 지리에 눈이 트였다. 어디에 어떤 것이 살아있는지 훤하게 꿰고 있었던 쿠로오에게 아카아시의 말은 터무니없는 상황이었다.






"아카아시, 너 여기서 살면서 부엉이 본 적 있냐?"
"아니요, 본 적은 없지만......."
"이상하다고 생각 안 했어?"






이상하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느껴지는 체온은 너무나도 따뜻해서 품 안으로 기어들어가 모든 감정을 쏟아버리고 싶었으니까. 뱀과 다를 바 없어진 피부에서 느껴지는 부엉이의 깃털 안으로 숨어들고 싶은 욕망을 꾹꾹 눌러담고 있었다. 동굴 밖으로 끌려나온 아카아시의 시신경에 쿠로오의 손 끝이 담겼다. 손가락이 향한 시선의 끝자락에는 땅 끝과는 상반된 분위기를 풍기며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푸른 산이었다.






"부엉이들의 보금자리야. 저기서 여기까지 날아온다고?"






육안으로 비춰지는 거리는 바로 눈 앞에 펼쳐져 두 발자국도 안 될 것 같은 거리였으나 땅 끝과 마주보는 산의 거리는 쉽사리 오고 갈 수 없는 장소였다. 인(人)으로 형태를 변형할 수 있는 부엉이는 보금자리에 존재하는 단 한 마리의, 그들의 수장이라고 불리며 산의 정상에 오르는 은빛의 남자였다. 사실을 인식하자 뒤통수를 가격당한 기분이었다. 심장이 멈추고 몸이 굳어 평생이라는 기간에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은빛의 부엉이는 아카아시를 향해 눈을 감은 채 바람을 타고 먼 거리를 이동했다.


안대로 막지 않은 세상은 아름다웠다. 달을 눈에 가득 담고 어두운 하늘을 향해 눈물을 쏟아내는 건 아카아시의 유일한 피난처였다. 바람을 저항하는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한숨 소리와 함께 서늘했던 등에 온기가 찾아왔다. 몇 번을 퍼득대는 소리가 멈추가 새벽의 고요함이 다시 찾아왔다. 고요함을 즐겼다. 세상에 혼자 남은 분위기를 즐겼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곳마저 따뜻하다. 아카아시는 다가오는 과분함에 고개를 떨궜다.






"팔 아파!"






정적을 깨는 목소리는 데시벨이 과도하게 높았다. 고요함을 조각내버린 등 뒤의 부엉이에게 느끼던 고마움마저 금이 갔다. 보쿠토의 한숨은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아프다는 구석만 콕콕 잡아서 중얼대는 목소리에 고요함을 즐기며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달을 눈에 담는 것마저 힘든 분위기에 결국 아카아시는 손을 올려 산을 가르켰다. 얼굴이 아닌 손 끝으로 향하는 금빛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저기에서 날아오니까 아프죠."
"에, 들켰어?"






아파! 들켰다는 사실을 더 이상 숨길 이유조차 없어진 보쿠토는 결국 아프다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고요함을 무찌르며 새벽을 고통받게 하는 목소리가 땅 끝에 우렁차게 퍼졌다. 쿠로오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절대로 돌아보지 마세요. 약속에 약속을 거듭하고 나서야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등으로 시선을 옮겼다. 적당한 근육이 잡힌 뒷모습과 은빛의 머리칼이 찰랑거렸다. 청동 손톱을 걱정하며 어깨 위에 손을 올리자 몸이 옅게 떨려왔다. 손톱이 아닌 손가락 끝의 여린 살로 근육을 꾹꾹 누르자 웃기 시작하는 목소리가 호탕했다. 데시벨은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땅 끝의 고요함에 금을 만들었다.


근육을 누르는 손길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아카아시를 괴롭게 만들던 보쿠토는 햇빛이 산 사이에서 모습을 보이자 미련없이 무릎을 폈다. 돌아보지 말라는 약속을 마지막까지 지킨 채 보쿠토는 땅 끝을 떠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부엉이들의 보금자리로 향했다.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사라진 첫 날과는 달리 다시 이곳에 온다는 인사까지 허공에 남긴 채 날개를 움직였다. 멀어지는 꽁무니에 시선을 고정했다. 은빛의 깃털들은 한 줄기의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달이 뜨면 서늘한 등 뒤를 다시 채워주겠지. 멀어져 눈에도 보이지 않는 보쿠토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보쿠토 씨.










* * *











먼 거리를 매일 바람에 의지해 날개짓을 하는 것은 어려웠다. 보금자리에 도착한 보쿠토는 항상 기진맥진이 되어 입조차 열지 않고 쓰러지기 일쑤였다. 수장이라는 부엉이가 모습을 감추는 빛과 함께 보금자리를 떠나고 전부 모습을 드러내는 해와 함께 쓰러지듯이 눈을 감는다. 보쿠토와 관해서 묘한 소문까지 돌고 있기에 코노하는 자신들의 수장을 그저 두고만 있을 수 없었다.






"수장, 자꾸 어딜 다녀."
"그런 게 있어."
"땅 끝으로 향하는 거 다 알아."
"에, 여기도 들켰네."






숨긴 적도 없었지만 들킨 것마저 신경쓰지 않았다. 피곤하다는 손짓과 함께 둥지로 뛰어든 보쿠토의 눈꺼풀이 순식간에 닫혔다. 이상으로 말을 꺼내는 건 자는 사람 앞에서 수업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긴 한숨과 함께 코노하가 자리를 떴다. 무슨 말을 해도 수장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한 번 목표에 깃발을 꽂으면 보쿠토는 그 목표가 사라질 때까지 먼저 놓는 일이 없었다. 이룰 수 있는 깃발이었고 단순한 욕심이어도 협조가 가능한 깃발이었다. 땅 끝으로 가는 건 상황 자체가 상반되었다. 언제 목숨을 잃을 지 모르는 위험한 곳을 수장이 직접 발을 들이고 있다. 해가 떨어짐과 함께 눈을 뜨면 보쿠토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땅 끝으로 바람을 타겠지.






"위험한 짓은, 하지 마."






이미 깊은 꿈을 꾸는 수장을 향하는 목소리가 흔들렸다. 보쿠토의 존재가 사라진다면 뒤를 이어 자리를 잡을 부엉이는 없다.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수장이 걷는 길의 앞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둥지 안으로 파고드는 파고드는 작은 몸 위에 깃털을 덮어주었다. 토닥이는 손길이 무거웠다. 모습을 서서히 감추는 빛과 함께 커다란 날개가 움직였다. 은빛의 부엉이는 석양빛을 타고 땅 끝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군대는 입들이 많았으나 보쿠토에게 소문은 장애물조차 되지 않았다. 얼굴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방향을 틀어 등 뒤에 안착하면 아카아시의 고개는 항상 떠오른 달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맞닿은 등이 차가웠고 따뜻했다.


손을 더듬어 비늘을 찾았다. 뾰족한 손톱이 고스란히 느껴졌으나 보쿠토는 망설이지 않고 손가락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끼워넣었다.






"잠깐, 보쿠토 씨."
"차가워."






버둥대는 손가락을 놓지 않았다. 등이 맞닿은 불편한 자세였으나 엉킨 손가락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어떤 표정을 담고 있을지 호기심을 자극했으나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잡힌 손 사이로 침묵이 오갔다. 잡은 손이 빈 공간을 채웠다. 빛이 보이면 보쿠토는 망설임없이 일어나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이 있는 곳으로 쉽게 발을 옮겼다. 남아있는 온기를 얼굴로 가져다댔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아카아시의 등 뒤에 앉아 손가락을 잡았다. 버둥대던 아카아시도 잡힌 손을 얌전히 내려놓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혼자 보는 달은 외로웠다. 등 뒤 서늘했던 과거는 잊혀진지 오래였다.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두 개의 금빛 눈동자가 멀리서도 자아를 표출했다. 아카아시의 눈꺼풀이 닫히면 날개가 접히는 소리와 함께 빈 자리가 채워졌다. 새벽과 함께 은빛 깃털을 기다렸다. 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빈 자리를 채우던 부엉이는 하늘로 돌아갔다. 먼 거리에 있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종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뒤가 서늘한 아침은 외로웠다.


날카로운 비명을 뒤흔들었다. 바람을 타고 전달된 비명의 시작저은 땅 끝이었다. 곤한 잠에 빠져 피곤함을 해소하던 보쿠토마저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비명이 산을 뒤흔들자 보쿠토의 날개가 펼쳐졌다. 빠르게 상공으로 올라간 커다란 부엉이는 순식간에 눈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비명소리의 시작점에 다다른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절망을 목격했다. 안대를 적시며 바닥으로 추락하는 방울들이 흥건했다. 비명에 가까운 울음은 기도를 찢어 붉은 액체를 동반했다. 기괴한 울음소리로 가득한 땅 끝은 잡소음마저 없었다. 품으로 가두자 버둥거렸다. 비명을 지르며 구슬프게 울었다. 아카아시의 마음이 찢겨나갔다. 듣지 않아도 전달되었다.






"보쿠토, 보쿠토 씨."
"아카아시, 진정해."
"보쿠토 씨, 마츠, 마츠카와가......."






메두사. 천지가 알고 있는 이름이 아카아시의 입에서 언급되었다. 죽었대요. 머리가 잘려서, 어떤 전사의 손에, 능력을 전수하고....... 횡설수설하는 아카아시를 붙잡았다. 마츠카와의 이름을 부르며 비명을 지르는 형제를 잃은 그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보쿠토의 살을 파고들었다.






"가지 말아요......."






쉬어버린 목소리와 함께 늘어진 몸이 무거웠다. 힘 없이 늘어진 몸과 달리 살을 파고드는 악력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얼굴에서 안대가 흘러내렸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검은색 천이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고개가 들린 아카아시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위험해.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보쿠토의 행동보다 눈꺼풀이 더 빨랐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뱀의 눈동자와 금빛 눈동자가 얽혔다. 굳어지는 몸을 느꼈다. 멈추는 심장박동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예쁘다, 눈."






입술의 움직임을 마지막으로 석상이 되어버린 보쿠토를 끌어안았다. 새벽마다 빈 곳을 가득 채우던 온기는 없었다. 그저 딱딱한 감촉만이 아카아시의 품 안에 가득 들어왔다.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 거칠어진 어깨에 볼을 부볐다. 금방 생채기가 났으나 불사의 몸은 순식간에 상처를 감췄다. 다시는 아카아시에게로 향하지 않는 눈동자에 스스로 시선을 맞췄다. 거친 얼굴을 쓰다듬고 품 안으로 당겨도 응답조차 없었다. 가지 말아요....... 아카아시의 목소리가 조용하게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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