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화는 BGM이 없습니다. 소재 제공(피에스타-애플파이)
쿠로켄 전력 주제 문자메세지
[켄마, 애플파이 먹으러 와.]
간단명료한 메세지에 침대에 가득 묻었던 몸을 일으켰다. 애플파이를 먼저 언급한 일은 드물었다. 단 것에 관심이 없기에 켄마가 입에 넣는 장면만을 엄마 미소로 답하던 쿠로오가 먼저 연락을 취했다. 늘어지게 게임기만 붙잡고 침대에 몸을 맡길 생각이었으나 애플파이라는 단어는 켄마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문을 열자마자 옆집에서 흘러나오는 애플파이 향기가 코를 괴롭혔다. 아밀라아제가 대량 생산되는 것을 겨우 삼키고 문을 두드리려 손을 들었다.
[안 와?]
[집 앞이야.]
답장 없이 몸만 움직이니 한 번 더 확인한 쿠로오의 메세지에 뒤늦게 대답했다. 켄마를 먼저 반기는 달콤한 향기와 함께 쿠로오가 고개를 내밀었다. 부엌에서부터 풍겨오는 애플파이 고유의 향기에 홀린 듯이 발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식탁에 자리를 잡은 켄마의 목울대가 눈에 띄게 울렁거렸다. 게임기 화면에 눈을 박고 조용히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행동했으나 냄새만으로도 먹고 싶어 안달난 몸짓은 숨길 수 없었다. 귀여워. 이제 막 오븐으로 들어간 애플파이로 돌아가는 눈동자의 움직임이 적나라했다.
"급해, 켄마?"
"아니."
짜증의 눈빛을 보내며 반사적으로 대답했으나 급한 몸짓이 전부 들켰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귀가 붉어졌다. 부정하는 언어로 현실을 피했으나 인간은 본능에 약했다. 가득 퍼져 실내를 채운 애플파이 냄새에 반응하는 몸은 숨기지 못했다. 급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 화면에 머리를 박고 턱을 최대한 당겼으나 식도로 넘어가는 침소리가 고요한 집 안에 울렸다. 결국 소리내어 웃어버리는 쿠로오에게 원망의 눈길을 보냈으나 애플파이 하나로 모든 것이 해제되는 켄마가 귀여웠던 쿠로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구워지는 애플파이를 수시로 확인하면서 식탁을 정리하는 손길에 켄마의 눈동자도 같이 돌아갔다. 손에 쥔 게임기에서 게임 오버를 알렸다.
차가운 우유와 접시를 내려놓은 손길에 맞춰 오븐에서 마치는 음성이 울렸다. 켄마의 눈동자도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뜨거움을 자랑하며 애플파이가 식탁 한 가운데에 자리잡았다. 애플파이에 고정되어 있는 눈이 반짝였다. 조심스럽게 조각을 낸 쿠로오가 켄마의 접시로 한 조각을 내려놓자 쿠로오를 향해 시선이 움직였다. 허락을 구하는 고양이처럼 눈만 빛내는 켄마의 모습에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꾹 눌렀다.
"먹어도 돼, 켄마."
기다리고 있었다. 포크를 든 손에서 기대감이 잔뜩 심어져있었다. 뜨거운 조각을 식혀가며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켄마의 표정을 살폈다. 대성공이었다. 켄마의 포크는 멈추지 않고 애플파이를 찍었다. 절로 미소가 나오는 장면에 억지로 입꼬리를 내리려 애를 먹었다. 켄마의 맞은편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던 쿠로오가 입술을 열었다.
"맛있어?"
돌아오는 대답 대신 고개가 두어 번 끄덕여졌다. 애플파이를 찍는 손짓은 느렸으나 쉬지않고 입으로 향하는 포크에 기분이 전부 실려있었다. 애플파이를 입에 넣는 켄마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입맛이 완전 상반된 사이이고 무엇보다 쿠로오는 단 것에 관심이 없었다. 연애를 하고 나서야 켄마가 애플파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파악할 정도로 단 음식에 신경조차 주지 않았다. 애플파이를 구실로 집에 초대한 건 사실이었으나 세상의 모든 행복을 전부 안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오물거리는 켄마는 예상하지 못했다. 천천히 턱을 움직이며 오물거리던 애플파이가 반이나 줄어있었으나 켄마의 포크는 계속해서 조각들을 찍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애플파이 맛을 느끼고 나서야 쿠로오의 표정을 읽은 켄마가 미간을 좁혔다. 표정 기분 나빠, 쿠로. 좁힌 미간은 금방 풀렸으나 쿠로오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움직이는 포크를 따라 옮겨진 시선의 끝은 켄마의 입술이었다. 마주앉아 시선을 독차지하는 기분은 별로였다. 혀 끝에서 느껴지는 애플파이는 달콤했으나 반복되어 굴러가는 눈동자는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쿠로, 기분 나빠."
"맛있다면서."
"그건 애플파이가."
"네가 그런 맛이니까."
입으로 들어간 포크가 멈췄다. 말을 뱉은 당사자의 눈빛은 여유로웠다. 몇 년이라는 시간동안 연애를 했으나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켄마는 관계를 거부했다. 쿠로오에게 안겨진 기회는 일 년에 단 한 번, 특별한 날, 쿠로오의 탄생일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존재하는 이벤트를 몸으로 기억하고 혀 끝으로 기억한 남자 친구에게서 나온 말은 손마저 굳게 만들었다. 안 먹을 거야? 목소리가 얄미웠다. 노린 걸까. 눈썹이 내려갔다.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을 온몸으로 표현했으나 당사자의 입꼬리는 여전히 귀에 걸려있었다.
남은 애플파이를 치우는 손길에도 대답은 없었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부엌 정리를 하는 쿠로오의 뒷모습이 유난히 들떠있었다. 자신의 애인이 허락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애플파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만들었고 반응은 대성공이었다. 냄새만으로도 자극되어 눈이 도록도록 굴러가는 새로운 모습도 발견했다. 보지 못했던 장면을 눈으로 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은 기분을 가져왔으나 켄마는 상반된 표정이었다. 왜 쿠로가 저런 말은 한 거지. 눈동자가 굴러갔다. 질문지를 펴놓고 예시를 작성했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켄마, 맛있게 먹었으니까 보답으로 뽀뽀."
"쿠로."
"어?"
"하고 싶어?"
진지한 눈빛으로 물어온다. 거짓말을 할 생각도 없다. 고개를 끄덕이자 켄마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떨어지는 머리 위로 커다란 손이 올라왔다.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만들었다. 네 허락 없이는 안 해. 애플파이 맛있게 먹었으니 뽀뽀나 해 달라고 조르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못했다. 솔직하게 대답했고 욕구를 억눌렀다. 머리 위에 올려진 손은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으나 들려오는 목소리가 웃음을 자아냈다. 쿠로오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가까워진 거리였으나 누구도 당황하지 않았다. 포개진 입술이 따뜻했다. 가벼운 입맞춤으로도 쉽게 귀가 붉어졌다. 값을 치뤘으니 허리를 피려는 쿠로오의 고개를 잡았다.
"해도, 되니까, 쿠로......."
붉어진 얼굴을 차마 들지 못하는 애인이 사랑스러웠다. 괜찮으니 무리하지 말라고 손을 내려놓은 쿠로오의 손목을 재차 낚아챈 켄마의 입술이 쿠로오오 맞부딪혔다. 오가는 질척함은 없었으나 부딪힌 입술만으로도 오르는 열에 숨이 가빠졌다. 켄마를 품에 안은 쿠로오에게서 나오는 말은 없었다. 소중한 것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힘이 들어가는 팔 안에서 버둥거리지 않았다. 쿠로오를 안은 팔에 같이 힘을 줘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켄마가 용기내어 말했으나 쿠로오는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항상 보던 쿠로오와 똑같은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던 모습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연한 질문에 당연하게 대답했지만 마음속에 남아있는 응어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생일마다 해왔던 이벤트처럼 생각했으나 여전히 그 일만 생각하면 온몸에 열이 올랐다. 이불에 머리를 깊이 파묻은 켄마의 눈꺼풀이 서서히 감겼다.
* * *
혼자 보내는 주말은 무료했다. 휴대폰으로 몇 번이고 눈길이 갔으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주말이면 게임기만 붙잡고 싶어하는 켄마를 불러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았으나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원망했다. 답장을 기다린 시간만 이십 분이 넘었다. 처음부터 휴대폰을 잡고 있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쿠로오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동네 한 바퀴만 돌고 잠이나 자야겠다는 계획을 순식간에 세운 쿠로오는 신발에 발을 욱여넣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답장도 없냐. 보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아서 항상 붉어지는 얼굴을 보는 게 귀여웠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밀었다. 울리는 진동이 쿠로오의 신경을 빼앗았다. 기대하며 휴대폰을 연 쿠로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쿠로, 애플파이 먹으러 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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